슬픔을 나눌 반쪽
세상에 슬픔을 함께 나눌 반쪽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그 반쪽과 얼마나 긴 슬픔을 함께 할 수 있을까?
한 번? 두 번? 세 번쯤?
일곱 번을 일흔 번을 슬픔을 함께 하는 사람도 있을까?
일곱 번을 일흔 번 하는 것은 하나님의 숫자지, 인간의 순자가 아니다. 인간의 숫자로 환언하면 아마 영원한 숫자가 될 것이리라. 영원히 슬픔을 함께 하는 반쪽은
나의 하나님 이시라.
하나님은 일곱을 일흔 번이 아니라, 영원히 슬픔을 함께 하는 나의 반쪽이시다. 그 하나님을 세상에 초청할 순 없을까? 기다림으로 이 슬픔을 함께 나눌 수 없다면야, 차라리 내가 영원으로 쫓아 가리라. 일곱을 일흔 번이나 함께 하는 영원한 그 곳으로…
“영원한 자리는 없습니다. 오히려 오랫동안 안정적인 위치에 있다, 불가피하게 불확실한 자리에 처하게 될 경우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질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안정보다는 불확실성에 더 많은 기회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눈앞의 안정을 흔쾌이 포기하고 불확실성을 향해 과감하게 뛰어드는 것이 보다 현명한 처사가 아닐까요? 변화를 받아들이면서 새로운 지식으로 무장하고, 새로운 가치관으로 세상을 보고, 새로운 마인드로 사람을 대하는 모습은 더욱 아름답습니다.” -남상학님-
♡도천 곽계달♡
2014.04.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