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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으라, 그러면 살리라

밑바닥 더 나아가 그 지하의 세계를 경험한 사람은 스스로
틀을 깨고 경계를 너머가게 된다. 그것이 장년과 노년의
세월을 지나면서 인생의 빛나는 경륜으로 자리하게 된다.

단역에서 조연으로 발돋움하는 윤씨에게도 예외없이 이혼이라는 시련 속에서 인생의 참 뜻을 깨닫게 되는 소중한 계기가 되었고 모진 세월 속에서 인생의 경륜을 터득하게 된 셈이다.

“고통은 고통으로 극복하라”는 실존주의자 니이체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고난이 유익하다”는 성경의 가르침과 맥을 같이 한다. 고통과 고난이 주는 교훈과 유익함은 성경의 인물 욥을 통해서 그 시작과 끝을 마무리할 수 있다.

“당신께서 어떤 분이시라는 것을 소문으로 겨우 들었었는데, 이제 저는 이 눈으로 당신을 뵈었습니다.” 그동안 거울을 통해 흐미하게 당신을 뵈었는데 이제는 직접 눈으로 당신을 뵈었습니다는 고백이다. 불완전했던 인간적 감정이 말끔히 씻어내려지고 이제는 완전한 존재를 깨닫는 경지를 누리게 되었다는 의미가 아니겠는가?

예수도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신 후, 지하세계에서 3일을 지낸 후 부활의 기적을 나타 내셨다고 한다. 그야말로 밑바닥의 밑바닥을 칠 때 부활의 영광을 누리는 것처럼, 인생의 밑바닥은 육에서 영의 차원으로 거듭나기 위한 이정표가 아닌가 여겨진다.

“죽고자하는 자는 살겠고 살고자 하는 죽으리라”는 소중한 선진들의 결단이야말로 시대를 초월하여 우리에게 전하는 소중한 가르침이 아니겠는가?

죽으라, 그러면 살리라!
죽음마저 사랑하고 결단하는 자는 축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의 것이기 때문이다.

밑바닥을 친 사람들의 공통적인 반응은 세상과의 인연을 모드 끊는다는 사실이다. 가장 소중한 세상 인연까지 좇아가서 끊게 하는 것이 밑바닥을 치는 사람들이 필히 겪어야 하는 과정이다.  주역에 삼재라는 용어가 있다. 9년 주기로 돌아오는 삼재란 인생을 단단하게 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인생 수련기간 정도로 여기면 되겠다.

재미 있는 사실은 인생에서 거쳐야 하는 삼재에는 두 가지 나름대로의 특징이 있다. 그 특징 중에 하나는 인생의 귀중한 순간(승승장구하는)에 겪는 삼재야말로 마지막 노년을 대비한 가장 가치 있는 삼재라고 할 수 있다. 같은 고난이라 할지라도 언제하는 고난이냐에 따라서 고난의 정수를 가늠할 수 있다는 것이고 두번째 특징은 진짜 고난은 그 고난의 강도와 수위가 끝을 내듯 쓰나미와 같이 연속해서 덮친다는 사실이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그 고난을 남의 탓으로 해서 억울한 감정으로 자신의 처지를 변명하거나 변호한다면 삼재의 의미는 희석되거나 그냥 오는 불행한 사건으로 그칠 것이지만 남의 탓이 아니라 모든 불행의 원인이 내탓이라는 확고한 의지가 있다면 그는 죽으면 죽으리라는 결연한 의지의 주인공으로 삼재를 지배하고 다스리는 위대한 인격자로 거듭나는 기회를 거머지게 될 것이다.

♡도천 곽계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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