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도 나도, 이제, 떠나야 할 시간, 고뇌해야 할 시간?
과연, 가정이라는 성 안에서 깊은 고뇌가 나올 수 있을까?
만약, 그렇다면, 두 팔 걷고, 가족이라는 거친 망망대해를 두 말 않고, 항해 하리다.
가정이라는 단어는 원래 안식처의 대명사가 아닌가?
고뇌하기 위해서는 일상으로 익숙한 안식처를 떠나서 광야로,
또 광야에서 젖과 꿀이 흐르는 비전인 가나안 땅으로 떠나가는 것이다.
허나, 곰곰히 생각하면, 누가 가정 안에서 고뇌의 유발자가 될수 있을까?
철천지 마누라일까, 아니면, 끝없이 받아줘야 하는 자식들의 사춘기적 철부지 응석인가?
어쨌든, 고뇌하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소크라테스 부인의 악역을 맡아야 하지 않을까?
당초에 인간은 떠나도록 설계된 것 같습니다.
정든 땅과 가족과 친구를 떠나고, 급기야는 가장 가까이 있는 세상에서 귀하고 사랑해야하는 소중한 인연들을 끊고 떠나게 인생을 예비하신 것 같습니다.
인생이 결단인 것은 늘 방황해야하는 고해 속에서 살아야 하기 때문인 것은 아닌가 생각되어 집니다.
허기사, 천재 화가인 고흐를 보면, 떠나고 싶어도 떠나지도 못하는 불쌍한 인생들은 또 오죽하겠습니까?
예수가 그렇고, 또한 이 시대에 사는 저를 포함한 우리들 모두가 그렇습니다.
언젠가는 나를 떠나는 그날까지, 늘 떠나고 있습니다. 세상 인생이 늘 어려워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떠나는 자, 헤매는 자는 종말의 이 시대의 주인공이기도 합니다.
디지털 노마드나 유비쿼터스적인 모습들이 바로 떠나는 자에게 내려주는 축복이요, 가르침이 아닌가 여겨지네요.
이제, 광야에서 가나안으로 떠날 시간입니다.
당신도 나도 이제, 고뇌해야 할 시간입니다.
♡안응 곽계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