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천사
2013.03.31
이름 없는 천사!
얼굴 없는 천사!
인간으로서 들을 수 있는 최대의 찬사가 아니겠는가? 사실 우리는 이름을 가진 몇몇 천사가 알고 있다.
군대장관 미카엘, 기쁜 소식 전해 주는 가브리엘 천사장, 하나님 찬양을 담당했던 루시퍼.
루시퍼는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 교만으로 인해서 1/3의 추종하는 수하 천사들을 데리고
쫒겨나서 이름을 사탄(Satan)이라고 개명을 했고 그를 따르는 미혹의 영을 사용하는 추종세력을 마귀(Devil) 라고 한답니다.
군대장관 미카엘(Michael)은 대천사로 불리우는 용맹한 천사로 대부분의
사탄 세력을 격멸하는 하나님으로 부터 최대의 신뢰를 받고 있는 천사장이다.
사실 천사란 하나님의 수족으로서 하나님 명령을 수행하는 영적인 무리들이다.
사탄 세력도 사실은 하나님의 간섭과 통제 아래서 나름대로의 악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성령으로 이끄심 받아, 광야에서 시험하는 사명이 마귀에게 주어졌고,
또 욥을 정식으로 천상회의에서 참소케하는 역할도 담당했고 모세의 시체를 놓고 격론을 벌린 것도 사탄이 아니었는가?
인간의 관점에서 볼 때, 사탄은 악의 무리라는 생각을 하는 것이지 감사하고 먹으면,
모든 것이 은혜라고 했고, 독이라 할지라도 약이된다고 하지 않으셨는가?
다시 본론으로 돌아 가자.
자기 이름을 숨기고 선행을 많이 한 사람을 이름 없는 천사나, 얼굴 없는 천사라고 칭한다.
사실 천사라는 직분이 자기를 나타내지 않는 것이다. 오직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 하나님 명령을 수행할 뿐이다.
대천사가 이름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도 어떻게 보면, 맡은 직분으로 나누기 위함이지, 구태여 이름이 필요 없는 것은 자기의 영광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천사면 천사지, 이름을 들먹이는 자체가 인간적인 표현일 뿐이다. 천사는 이름이 없다.
우리의 삶도 이름이 없고 자기의 영광 없이 살 수만 있다면,
이 땅에 살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며, 명령에 순종하며 살 수만 있다면, 우리는 천사와 같은 사명으로 살아 가는 것이다.
이름 없는 천사란, 결국 자기를 부인하고 매일 주님의 십자가를 지고 천사의 직분을 감당하는 사람을 일컽는다.
♡ 안응 곽계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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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는 천사)
지금으로부터 5년 전 추운 겨울 어느 날, 15년 동안
익명으로 기부활동을 하면서 총 6억 달러(한화 약 5천억 원)를 기부해온
재산가가 한 시민의 제보에 의해 얼굴을 드려내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그의 이름은 찰스 피니. 피니는 가난한 집안에서 자수성가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뉴욕에 있는 코넬 대학을 다닐 시절에는 군복무를 전제로 정부에서 학자금을 받아 수업을 들었고 틈틈이 샌드위치 장사를 해서 궁핍한 생계를 유지했다.
피니에게 장미빛 인생이 펼쳐진 것은 군을 제대한 70년대 초, 대학친구들과 공항면세점 체인을 설립하면서부터이다. 피니의 사업은 나날이 확장되어 1996년의 매출액이 약 30억 달러(한화 약 2조5천억 원)에 달할 정도가 되었다. 사업이 안정권에 들어오자, 피니는 곧 바로 비영리재단을 설립했다.
그는 가명으로 된 자기앞수표를 쓰는 등 철저히 자신을 숨기면서 회사의 운영자금을 제외한 대부분의 돈을 사회단체에 기부했다. 총 기부액 6억 달러 가운데 47%는 대학에, 24%는 국제기구에, 19%는 고아원과 양로원으로 돌아간 것이다. 피니의 선행이 세간에 알려지자, 미국 언론들은 ‘얼굴없는 천사’를 찾기 위해 안간힘을 써 보았지만 그때마다 늘 허탕만 쳤다.
그러나 진실은 15년만에 한 시민에 의해 아주 우연하게 드러났다. 피니가 면세점의 일부 상점을 프랑스 회사에 매각하는 과정에서 새 주인이 회계장부를 들여다보는데 엄청난 액수의 기부금 내역을 보게 된 것이다. 새 주인은 당장 뉴욕 타임스에 제보를 하게 됨으로써 ‘얼굴없는 천사’의 실체가 밝혀지게 된 것이다.
전화 인터뷰 과정에서 알게된 거부 피니는 고작 15달러짜리 시계를 15년째 쓰고 있는,
집도 없고 자동차도 없는 검소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기부를 하게 된 동기에 대해 물었을 때, 피니는 아주 소박하게 대답했다.
“제가 필요한 것보다 많은 돈을 모았어요.
돈은 매력적이긴 하지만 그 누구도 한꺼번에
두 켤레의 신발을 신을 수는 없습니다.”
– 이재길님 인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