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인이여, 열정을 가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요한계시록 3: 15-16>
요한 계시록에 나오는 지상의 일곱교회 중에 라오디시아 교회는 빌라델피아 교회에 이어서 성경에서 언급 되고 있다.
빌라델피아 교회는 지상에 있는 교회이지만, 하나님이 지극히 사랑하는 교회의 롤모델로 그려지고 있다. 장차 하늘에서 내려올 아름다운 새 예루살렘 성의 표현으로 빌라델피아 교회를 예표하고 있었다.
이에 반해서, 라오디시아 교회는 타락한 지상 교회의 대표적인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는 마치 빌라델피아 교회가 그의 가는 길을 벗어 나서, 마지막 남은 자로서의 자격을 상실했을 때 보여주는 모습이라고 여길 수 있다.
빌라델피아 교회와 라오디시아 교회는 장차 하늘에서 내려올 교회와 지상의 타락한 인간 중심의 다수 인간들의 의견이 분분하고, ‘말도 많은(Many Opinions from Multitude)’ 인위적 교회를 대비시킨 것이다.
빌라델피아가 가지는 단어의 의미가 ‘형제 사랑(Brotherly Love)’이라면, 이에 반해서 라오디시아의 의미는 ‘형제 자랑(Brotherly Pride)’이라고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네가 거룩하고 진실하다” <요하계시록 3: 8, 10>라고 칭찬을 받은 교회가 빌라델피아 교회였다.
이에 반해서, 타락한 라오디시아 교회에 대해서는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다고 하시면서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고 하지만, 곤고하고 가련하고 가난하며 눈이 멀었다고 하나님이 평가하셨다.
이는 빌라델피아 교회의 경우를 들어서 라오디시아 교회를 들여다 보면, 라오디시아는 옛적의 부와 번영에 심히 자고하여, 지금은 변질 되어 버린 믿음을 살피지 못하고, 세상 자랑에 물들어 하나님을 바라 보지 않는 타락한 지경에 달했다는 것이다.
즉, 라오디시아 교회는 빌라델피아 교회에게 마지막 남은 자로서의 축복의 조건인 ‘인내의 말씀’을 지키지 못하였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을 배반했다는 의미도 함께 포함하고 있다 하겠다.
하나님이 아니라, 세상을 자랑하고, 말씀을 지키지 않고, 하나님 이름을 배반하는 것, 이를 두고 차지도 더움지도 않은 미지근한 믿음의 자세라 하겠다. 이를 열정이 없는 신앙의 자세라고도 하겠다.
이 모든 열정 없는 신앙은 하나님과 함께 하지 않기 때문에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그 원인을 진단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한, 우리는 감히 하나님을 사모하는 열정을 잃을 수가 없을 뿐더러, 하나님의 말씀을 지킬 것이며, 하나님을 감히 배반하지 못할 것이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요한계시록 3: 18-19>
하나님은 라오디시아 교회에 세가지를 사서 준비하도록 권하신다. 금과 흰 옷과 안약이다. 하나님의 거룩함과 하나님의 구속하심과 자신의 처지를 바로 돌아보도록 하라는 회개의 권면이다.
이 세 가지의 공통점은 바로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지는 거져 제공되는 선물임을 깨닫는 것이다. 여기서 산다는 의미는 스스로 열정을 가지고 간절히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라는 의미가 된다. 이를 가난한 심령이라고 한다.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는 바로 그의 사랑하는 자녀에 대한 사랑이다. 그래서 부모가 그의 사랑하는 자녀에게 하듯이 책망으로 채찍를 아끼지 않으신 것이다.
이제, 자녀 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서기 위해서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열정을 가지고 다가 서는 것이요, 이는 자신의 가련한 처지를 돌아 보는 회개의 자세가 아닐까 한다.
♡ 안응 곽계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