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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와 과거에서 배운다

영화를 보긴 봤는데, 당시 옛 유명인들 속에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장면에서 주인공 대신 본인이 앉아 있었다는 착각을 한 적이 있는 영화입니다.

현재 우리가 우상화하고 있었던 그분들도 당시에는 그야말로 세파 속에서 일상에 어울리는 고뇌와 희로애락 속에 살았다는 친근함이 좋았다는 생각을 한 영화네요.

영화 분위기에 홀려, 그 영화 속에 담겼던 주인공에 대한 개인적 교훈은 전혀 생각도 하지 못했는데, 역시나 여성의 섬세한 터치가 닿으니 화룡점정의 기적(?)이 펼쳐진다는 진실을 알고나 계실까? 세종시 나성동 먹자골목이 마치 ‘작은 무대 같은 장소’라는 표현에 대한 느낌이 좋았습니다.

덕분에 소설 한 편 잘 떼었습니다.

♡도천 곽계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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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에서 가끔 <Midnight in Sejong> 찍습니다. ㅎㅎ 금강변의 좌안(?)이라고 해야 할까요?
세종시의 강남이라고 불리는 나성동이 있습니다. 주점이 가장 많이 몰려있고, 밤거리의 활기도 나름 느낄 수 있습니다.

나성동의 먹자골목은, 한두 블럭 걷고 나면 금방 끝나버리고 아파트 단지가 바로 나오는 ‘시시한’ 규모이지만, 그 때문에 더 특별할 때가 있습니다. 마치 영화 세트장에 들어온 것 같기 때문인데요. 세트장은 작지만, 영화는 하나의 세계입니다. 세트장을 성급히 나가버리지만 않으면, 세트장 속 배우로서 불빛 무성한 거리를 계속 배회하며 무수한 영화를 찍을 수 있습니다.

우디 알렌 감독의 흥행작인 <Midnight in Paris>에서 남자주인공 길 펜더(Gil Pender)는 여러가지로 불만족스러운 현실의 문제들을 가득 안고 파리 여행을 오게 되는데요. 파리에 살고 싶은 본인과 달리 말리부와 같은 부유층 휴양지에 살고 싶은 약혼녀, 공화당 지지자인 장인부부, 현학적이며 약혼녀를 유혹하는 친구 남편이자 여행 가이드 등이 등장합니다.

길(Gil)은 파리의 골목 어딘가에서 헤매다가 오래된 푸조 차량에 초대되어 갑자기 1920년대의 파리 속으로 빨려 들어갑니다. 그 속에서 당대의 문인들과 예술가들, 매력적인 여인까지 만나 환상적인 시간을 보내지만, 그들조차도 그들의 현실보다 더 과거(1890년대, 르네상스 시대…)를 동경하는 것을 보며 급 본인의 과거지향이 현실의 부정임을 깨닫습니다.

마침 그가 그의 현실을 쓴 소설에 대해 헤밍웨이를 비롯한 작가들이 평을 해줍니다:
“그런데 이해가 안 가. 남자 주인공이 여자친구가 바람피는 것을 모른다는 것이.”

현실세계로 돌아간 주인공은, 약혼녀가 현학적인 친구 남편과 바람을 피웠고, 본인은 여자친구와 장인부부의 희망과는 별개로 파리에 가난한 작가로 남고 싶으며, 애초부터 장인부부는 그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는 현실을 마주합니다. 그리고 영화는 약혼녀와 헤어진 그가 비오는 파리의 거리를 걷다가 역시 우산없이 비오는 거리를 걷는 것을 좋아하는 여인과 만나 서로를 소개하고 반가워하며 나란히 걸어가는 것으로 끝납니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의 경험담을 들은 약혼녀가 ‘망상속의 친구들(hallucinatory friends)’ 이야기를 집어치우라고 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이 ‘망상 속의 친구들’ 이야말로 그가 현실을 바로 보도록 해주었다는 사실을, 경험하지 않은 그녀는 몰랐겠지요.

문제는, 인정하고 싶지 않은 현실까지도 바로 볼 수 있도록 해주는, 그 망상을,
그 환각을 우리가 과연 만들 수 있는가 그리고 그 힘 속에 누군가를 빠뜨릴 수 있는 능력이 우리에게 있는가 하는 것이겠지요.

영화 속에서 1890년대가 1920년대에 마차를 보내고, 1920년대는 밀레니엄 시대로 오래된 푸조를 보냈듯,
우리가 20년 후의 누군가를 초대하고 싶은 <즐거운 환각>을 오늘 이 자리에서 만들어낼 수 있을까요?

불빛 무성한 세종시 나성동에 잠겨 동료들과 즐거워하며 몇 자 적었습니다.”
-김신애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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