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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세상이고, 하늘은 하늘이라

2016.03.28

ㅎㅎㅎ 혜민스님, 너무 잘나고 특별한 사람이지요. 이분이 ’40에 깨달은 세가지 인생의 지혜’라는 내용을 글을 올렸네요.

문득, 이분이 60이 되고, 70 줄에 들어 서서는 또 어떤 깨달음의 세상 지혜를 줄까? 하는 큰 기대를 금치 못하는 것은, 그만큼 나이가 주는 지혜의 차원이 확연히 다를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남 눈치 보지말고, 주인의식으로 자기 인생을 당당히 살아라”는 훌륭한 가르침입니다. 사실 눈치란, 세상 눈치를 이르는 말이지요.

세상 눈치는 세상의 상황에 따른 변화에 민감하게 적응해서 나름대로는 생존하기 위한 인간의 자연스러운 자기 보호 본능의 색갈이라고 해야 하겠지요. 이는 적자생존에 필수적인 다윈의 진화론과도 일치하는 사항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회에서는 “눈치 없다”는 말이 최악의 핀잔으로 받아들이는 것만 해도 이 사실을 잘 증명하고 있는 겁니다.

사실, 40 줄에 선 사람이 세상의 논리를 정리된 생각으로 이렇게 대중에 발표하기가 쉽지가 않은 일이지요. 역설적인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40이 되는 동안에, 세상에서 눈치보지 않고 살았다고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근대철학과 사상의 아버지인 데카르트가 주장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코기토 에르고 숨)”는 문장과 같이, “나는 눈치를 본다, 고로 존재한다”하는 등식이 우리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인간들의 참 모습은 아닐까요?

그렇다고 남의 눈치를 본다는 사실을 저급한 것이라고 치부할 수만은 없는 것은, 글로벌화와 융합화를 동시에 지향하는 디지털 네트워크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디지털 노마드가 가져야 하는 가장 소중한 요소인 남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합력의 키워드가 바로 눈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가 요구하는 인성 즉, 사람의 됨됨이를 설명하는 지성지수(IQ: Intelligent Quotient)와 감성지수(EQ: Emotional Quotient) 보다, 요즘은 눈치지수(NQ: Noonchie Quoitient)가 더 소중한 인성 평가지수라는 우스개 아닌 우스개 소리가 회자 되고 있는 형편이랍니다.

세상 안에서 세상을 논하는 자는, 세상을 벗어나지 못한 우물 안 개구리의 시야를 가질 수 밖에 없지요. 우물이라는 세상의 밖에 있는, 보이지 않는 세상에 대해서는 알 도리가 없다는 거지요.

플라톤의 국가론에 따르면 동굴에 갇힌 인간은 동굴 속에 켜진 촛불로 인해 벽에 비친 그림자를, 즉 실제 세계의 허상을 진리로 여긴다고 합니다. 동굴 속에 갇힌 인간은 자신들이 본 그림자를 진리라고 여기는 오류 속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겁니다.

낮은 차원인 세상 관점에 의한 처세술은 지 아무리 뛰어봐도 벼룩이요,
조족지혈 즉, 새발의 피에 지나지 않는 거랍니다. 세상이라는 허구의 동굴에서 해방 되어, 자유함을 구가 해야 하지 않을까요?

♡ 안응 곽계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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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민스님- 내가 사십대가 되어 깨달은 세가지
http://me2.do/5PqL8Jq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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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에서 자아의식이란 ; 차인석 교수의 [근대성과 자아의식] 읽기 (2)
출처 : 가을남자의.. | 블로그
http://naver.me/IxXk3C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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