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기적 같은 랑데뷰!
오늘 아침은 우연히 스티븐 달드리 영화 감독의 작품 평론에 관한 대담을 접하게 되었다.
필자도 영화에 관한 한, 유아시절 때부터, 대구역전 군인 PX 극장을 시작으로 해서 무수한 에피소드가 있을 정도로 영화와 깊은 사랑의 관계를 부인할 수가 없다.
회색의 시대, 희망이라곤 어디에서도 추구할 수 없었던 소시적 필자에게는 오로지 영화만이 유일한 탈출구였음을 새삼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빌리 엘리엇(Billy Elliot, 제이미 벨), 책 읽어주는 남자(The Reader, 케이트 윈슬렛, 랄프 파인즈) , 디 아워(The Hours, 니콜 키드만, 줄리안 무어, 메릴 스트립)등의 탁월한 영화를 감독한 스티븐 달들리를 다시 재조명하는 가운데, 영화라는 거대한 예술 장르에 대한 필자의 속좁은 시야를 새로이 깨우치게 했다.
영화는 그야말로 종합예술이 아닐 수 없다. 우리가 오페라나 뮤지컬을 종합예술이라고 높이 평가하지만,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영화에 대한 평가는 이들에 비해서는 다소 저평가 되어 온 것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들게 했다.
그러나 오늘 이 아침, 스티븐 달들리를 만나면서 영화 장르에 대한 평가를 완전히 바꾸기로 확정을 했다. 필자의 인생 노트에는 늘 안중근이 있었고, 스티븐 스필버그가 있었다.
오늘 이 시간 부터, 필자의 인생 노트에는 스티븐 달들러가 확고히 자리잡을 것을 애써 부인하고 싶지는 않다. 그의 영화로 부터 영혼의 소중한 파편들을 수집해야 하기 때문이다. 어느 한 장면에서도 생명이 살아 움직이는 경험을 피할 수 없다.
인생의 진정한 가치는 어찌보면, 그가 지닌 상승과 하강, 전진과 후퇴 그리고 사이드 워크로의 수평이동, 즉 다양성에 있는 것이 아닐까?
단조한 인생은, 그것이 부자든 행복이든 가난이든 불행이든, 인생이 가진 그 스스로의 아름다운 가치를 부정하는 것은 아닐까?
역사와 시대를 뛰어 넘고, 광활한 우주를 넘어서서, 영원 속에 인생을 우뚝 세우는 것이 창조의 진정한 모습은 아닐까?
결국 인생의 다양성은 희망과 절망, 축복과 저주를 서로 이어 주면서 그 깊이와 넓이와 높이를 확장하면서 성숙의 지경을 넓혀주는 것이기도 하지요.
♡ 안응 곽계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