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의 의미, 그리고 천국의 존재?
외홀로 남고자하고 떠나고자 하지만 하루도 인연이 연결되지 않은 날은 없고 또한 인연으로 인한 고뇌가 그칠 날이 없다.
인연의 고리, 관계의 고리가 이렇게 골이 깊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매 순간에도 인연이라는 연결고리로 인생이 지어진다는 불교의 연기법이야말로 인생 지혜 중의 지혜가 아니겠는가?
결국 인생은 인연으로 인한 인과응보의 법칙과 모든 것이 인과응보의 인연으로 인해 정리된다는 사필귀정의 법칙에 의해 이루어져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생각을 해본다. 인연으로 이루어졌다는 불교의 가르침,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생활의 지혜요 철학이다.
만약, 이러한 우연한 인연으로 이루어진 인생이라는 오케스트라의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인 지휘자가 있고 미리 완성된 악보대로 필연의 인생이 연주된다면 어떻게 인생을 다시 정의해야할 것인가? 분명한 것은 연기법이라는 교훈은 한낱 소경 코끼리 뒷다리 만지기 식의 부분에 지나지 않는 사실이 되겠다.
우리는 “우리네 인생이 우연인가 필연인가?”하는 새로운 질문과 선택 앞에 서게 된다.
어제 즐거운 대화 가운데, 어느 분이 “천당이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천당은 있기도 하고 또 없기도 하다”라는 답을 할 때에는 천당의 존재 여부는 첫째는 하나님 소관이기 때문이기에, 그리고 누구도 하늘 천당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성적으로는 적어도 천당의 유무를 제시할 아무른 논리도 없다. 이에 대한 또 다른 두번째 변명을 한다면 흔히 우리가 내뱉는 말로, 천당과 지옥은 마음 먹기에 따라 그 유무가 결정된다는 사실이다.
어쨌든,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는 대답은 상황에 따라 변한다는 의미 외에도 우리가 단정할 수 없는 애매한 문제라는 사실이고, 이러한 경우 분명한 것은 “우리는 모른다”라는 소크라테스 형의 고집이 바른 답이라는 생각이 든다. 누구도 모른다는 그 애매한 상황에서는 “천당은 없다”라고 내지르는 것이 오히려 우문에 대한 솔직한 정리된 답이라는 결론을 내려본다.
물론 싱상력을 동원한 아름다운 천당의 유무까지 부인할 이유는 전혀 없다. 그리고 미세(micro)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우리들 논리를 넘어서는 독특한 확율적 양자역학현상을 고려해 볼때 우리가 범접하지 못하는 세계가 실제 존재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부인할 수 없다.
그리고 현실이 아니라, 다른 차원에 존재하는 하늘의 영적 영역에서야 우리가 어찌 가타부타할 수 있겠는가? 그래도 우리가 조심스레 주장할 수 있는 것은, 지금, 여기에는 분명히 천국은 없다.
♡도천 곽계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