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일꾼, 청지기!
바울은 <골로세스 1:23, 25>에 ‘복음의 일꾼’, ‘교회의 일꾼’이라고 했지요. NIV에서는 ‘Servant’ 라고 표현했고, KJV에서는 ‘Minister’ 로 표현 되었네요.
다른 표현으로는, 청지기나 집사로 표현 되는 ‘Manager’ 나 ‘Steward’가 사용 될 수도 있겠지요.
<에베소서 3:7>에서도 일군에 대한 표현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에 따라 일군’이 되었다고 했지요. 하나님의 일꾼이 된 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로 여긴 것이지요.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 앞에서는 한 없이 부족하고 미약한 존재 임을 깨닫게 됩니다. 여기서 바울은 ‘지극히 작은 성도 보다도 더 작은 성도’라는 일군 됨의 겸손한 마음 가짐을 보여 줍니다.
그는, <에베소서1:1>에서 일꾼의 정의를 내려 줍니다. 그리스도 예수에게, 이방인을 위해, 갇힌 자가 되었다고 했지요. 일꾼은 누구에게 속해서 무엇을 수행하게 되는 사람이지요.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에게 구속된 사람이라고 하고, 이방인을 위해서 일한다고 했지요. 무엇이 이방인을 위하게 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알게 해서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후사게 되게 하기 위해서이지요. 이를 위해서 그리스도의 풍성함과 하나님에게 감추이신 비밀의 경륜을 드러나게 하고, 교회를 통한 각종 지혜를 알게 하는 것이랍니다.
이는 결국 이방인들이 성령으로 속사람을 강건하게 하고,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우리 마음에 계시게 하고, 사랑 가운데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그리스도의 충만함을 누리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지요.
결국 일꾼이란 직분도, 자기 스스로의 노력이나 의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순전히 은혜로 또는 속사람이나 하나님의 경륜을 깨닫게 하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말미암은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에게 속한 진정한 일꾼들은 도무지 자신이 자랑할 것이 하나도 없는 ‘무익한 존재’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여기게 되는 것이겠지요.
<로마서 1:1>에 예수 그리스도의 종된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다고 했다. 여기서 일군을 종(Servant)으로 표현 했고, 부르심을 받았다(called to be)는 의미는 바울의 의지와 전혀 상관없이 이루어진 상태를 잘 설명하고 있다.
다시 <골로세스 1:25, 28>로 돌아가서, 그가 교회의 일꾼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는 것’이고, 이는 곧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우리를 세우게 하기 위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현대 사회 교회 청지기의 문제는 코우칭이 아니라, 가르치려는 드는 것이 문제이겠지요. 다 자기 자랑에서 나오는 우월감이 문제입니다. 교만은 가장 큰 죄이고, 우리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성령의 열매를 목말라해야 하겠지요.
“행위가 자랑이 된다”는 의미는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는다” 라는 하나님의 말씀과 매우 잘 대칭이 됩니다.
“무엇을 믿을 것인가?”에 따라서 잘못 된 믿음을 가지게 될 수도 있습니다. 잘못 된 믿음이란 행위에 버금가는 내용이 됩니다.
우리가 무익하다는 것을 믿는 믿음, 우리가 우리 된 것은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 즉 거저 주시는 선물이라고 여기는 믿음을 참된 믿음이라고 하지요.
어린 아이가 되어서 부모에게 전적으로 의지하는 어린 아이와 같은 믿음이어야 의에 이르는 믿음이라고 칭찬을 받을 수 있는 겁니다.
내가 하나님의 사업을 도와 주겠다는 선한 인간적인 마음 조차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의에 대적하는 악한 행위가 된다는 사실을 잘 깨달아야 하겠지요.
무엇이든지 하나님에게 의지하는 순종의 자세가 최고의 의로 여겨 진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이것이 진정으로 나를 부인하는 좋은 믿음이 됩니다.
내가 믿는 믿음도, 나를 부인하려는 어떠한 시도나 노력조차도 또 이를 아무리 선의의 뜻으로 행하려 든다할 지라도 이는 하나님 의로 여겨지는 믿음이 아니고, 자신의 의로 여겨지는 바벨탑으로 자랑하는 행위와 교만과 죄로 여겨진다는 사실입니다.
♡ 안응 곽계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