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을 넘어, 진리를 맞이하라!
어느 스님의 전력을 가지신 분이 “부처는 자신이 질문한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리고, 불교는 픽션이고, 기독교는 부활의 히스토리라고 간증했다.
재미 있는 내용이다.
어쨌든지 간에, 실제 불가에 몸 담아 정진하셨던 분이 내지른 사자후는 그 영향력과 파급력이 지대하다.
불교는 인간의 존재를 묻고 또 물어도 결국은 제 자리로 되 돌아 온 자신의 존재를 확인할 뿐이다. 한 번 태어나면, 필시 죽어야 하는 허무함을 감내해야 하는 세상의 지고한 철학과 그 맥을 함께 한다.
더 나아가서, 불교는 어느 면에서는 우리네 전통 사상과 문화의 인자로 우리 뇌리에 깊이 새겨져 있음을 부인할 수가 없다. 아무리 이론과 추구의 내용이 위대하다 한들, 그 자체가 구원의 길인 진리와 생명일 수는 없다.
인간 한계의 벽 안에 머무르는 한, 번데기가 그 두꺼운 껍질을 벗고 나오지 않는 한 나비가 되지 않는 것과 같이, 생명의 진리인 그 원천에는 절대로 다가 갈 수가 없다. 죽음만 있지, 거듭남의 부활 생명을 거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화룡점정’이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마지막 눈을 찍지 않으면 용이 되어 하늘로 날아가지 못하고 개천의 기는 용에 지나지 못한다는 가르침이다. 세상의 어떤 위대한 종교도 생명인 예수로 인생의 눈에 마지막 점을 찍지 않으면 절대로 구원의 생명을 누릴 수 없다는 가르침이다.
영으로 주어진 하나님 숨으로 주어진 생명 만이 부활의 생명을 영위할 수 있다. 그 어떤 인간의 뼈를 찧는 수양이나 노력으로도 피조물인 인간 스스로는 결코 진정한 생명으로 나아가지 못함을 깊은 통찰로 깨달아야 한다.
차원이 다르고 소속이 다르기 때문에 불과 물이 하나가 되지 못하듯이 영원히 육이 영을 침범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창조주 하나님 영으로 인도 받는 자 만이 영원한 생명 샘물을 내는 반석이신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영생의 생명수를 공급 받을 수 있다.
여기에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오직 예수’, ‘오직 말씀’, ‘오직 십자가 사랑’의 의미가 있다.
불쌍한 영혼들이여, 마지막 때, 자기 부인과 매일 십자가를 짊어지고 가난한 심령으로 마지막 주어진 구도의 열심을 내어, 주님이 창세 전에 계획하시고 예정하신 영생의 문으로 들어 가도록, 혼신을 다해 내달려야 할 것이다.
♡ 안응 곽계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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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경 스님 기독교로 개종한 이야기 – 안드레와함께 – pdts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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