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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지식이란,내가 모른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

내가 “안다, 모른다” 따질 때에는 ‘지식의 시작’이고, 모른다고 했을 때에는 ‘지혜의 시작’이라고 한다. 논리와 이성으로 ‘사물을 판단(선과 악)’하기 시작하면, 이는 지식의 수준에서 머무르고 있다는 증거가 되지요.

그런데 왜 성경에서는 남을 판단하지 말라고 했을까? 지식은 부분적이고 상대적이기 때문이다. 부분과 상대는 전체와는 다르게 절대적이지 않다는 이야기가 된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부분과 상대적인 것으로 전체와 절대적인 것처럼 위장해서 떠들지 말라는 이야기가 된다.

속된 말로 진리 앞에서 진리인 체 떠들거나 나서지 말라는 이야기가 된다. 사실 진리가 아닌 것은 모두가 가짜요, 허위요, 모두가 거짓말인 허상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전체적이지 못하고 절대적이지 못하니 모두가 가짜나 허상이 될 수 밖에 없다.

지식으로 판단 하는, 소위 인간이 자랑하는 이성과 논리적 사고의 모든 내용이 허위라는 기반 위에 세워진, 인간이 그토록 추구하는 바벨탑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그래서, 성경의 전도서에서 지혜의 왕인 솔로몬은 “세상에 선한 것이 하나도 없고, 모두가 허사요 허사요 또 허사로다!”라고 고백하지 않았는가?

이렇듯 인간 존재를 포함해서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진리라는 거울에 비추어 보았을 때, 그 존재 의미를 잊게 된다. 100% 순수한 진리가 아닌 것이 진리인 체 가장하는 것은 모두가 가짜를 진짜라고 허위로 꾸민 것이니, 죄가 되는 것이고, 죄를 죄가 아닌 것처럼 꾸미고 주장하는 모든 행위는 악하고 교만한 마음에서 발현 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성경의 창세기에서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 동산 중앙에 있는 부분적인 지식인 선악과를 먹으면 “반드시 죽으리라”고 진리를 선포했지만, 하와는 뱀에게 진리의 말씀을 부분적으로 왜곡해서로 “죽을까 하노라” 라고 전한다. 이에 뱀은 이보다 한 수 더 떠서 하와에게 “결코 죽지 않고 하나님같이 선악을 알게 되리라”라고 거짓으로 왜곡하게 된다.

그러니, 쥐 꼬리만한 지식의 앎과 부분적인 깨달음으로 인해 마치 전체를 대변하는 것처럼 착각하는 것은 지식의 일부분, 즉 무지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하겠다. 그런 의미에서 ‘지식의 완성’을 ‘지혜의 시작이라고 하고, 지식의 완성은 존재의 진정한 가치를 깨닫는 것이다. 다른 말로 첨가한다면, 지식의 완성은 지혜의 근본을 바탕으로 할 때에만 존재의 의미를 나타낼 수 있다는 것이다.

“‘나’라는 존재가 절대 가치를 가진 진리 앞에서 무엇인가?” 하는 자아 가치의 온전한 깨달음을 위한 간절한 구도의 열심을 통한 고뇌의 과정을 필히 거쳐야 한다. 우리는 이를 흔히 용광로를 거친 정금으로 비유하기도 한다.

그 온전한 깨달음은 있는 그대로 자신을 발가 벗겨서 바라 보는 것이다. 위선적이고 연약하고 부족해서 도저히 스스로는 설 수 없다는 절대 사실을 깨달는 것이 지식이 완성되기 위한 첫 걸음이라고 하겠다.

“내 백성이 무지해서 망하는 구나” 하신 하나님의 음성이 더 친근감을 가지고 다가 와야 한다. 내가 무지하다는 사실 조차도 모르고 떠들어 대면서, 남을 정죄하는 죄를 짓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의 처참한 모습에 진리이신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고 했지 않는가? 무익한 나라는 존재 가치를 깨닫고, 마치 목마른 어린 사슴이 내를 향해 뛰어 달려 가듯이,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의 절대 가치인 진리를 바라고 나아 가, 그 분의 품에 안길 때 비로소 전체를 보고 누리는 깨달음, 즉 ‘지식의 완성’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지식의 완성은 지혜의 근본 위에 머무는 것’이고, 이는 부족한 자신의 ‘상한 심령’을 여호와 하나님에게 전적으로 맡기고 의지하는 것이다. 당신은 절대로 스스로 완전한 지식의 깨달음에 이를 수 없다. 하나님과 함께 하시고, 근본 하나님이신 예수 외에는 부처를 포함한 세상 어느 누구도 스스로 진리에 다다른 사람은 없다.

설령 도통의 단계에 들어설 만큼 당신의 깨달음이 신의 경지에 와서, 세상 만물, 우주와 자연의 흐름의 이치를 다 꿰뚫는다 할지라도, 절대로 부분에서 벗어날 수 없는 ‘무지 중의 무지’, 교만의 경지일 뿐이라는 사실을 겸손히 깨닫고, 지혜의 근본이시고 실체이신 여호와 하나님에게 전적으로 맡겨야 한다.

무지한 자신을 아는 것,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와의 한계를 분명히 그을 수 있는 깨달음, 완전한 지식이란, 창조주 앞에 서서 내가 모른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 이것이 지혜의 정수가 아니겠는가? “완전한 지식이란 자신을 부인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다.

주여, 이 무익한 종을 용소하소서!”

♡ 안응 곽계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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