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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인물 도마평전!

도마는 의심 많고 융통성이 없어서 보지 않고 확인하지 않으면 믿으려 하지 않는 그야말로 믿음이 부족한 사람으로 그려진다. 그리고 성질이 급해서, 자기 성격을 절제하지 못하는 성품으로 보인다. 이것이 한 편으로는 도마의 솔직한 성격으로 이해하려는 면도 있다.

성경에서 그의 성격을 알 수 있는 부분은 세 부분으로 꼽을 수 있다. 하나는 죽은 나사로를 보기 위해, 위험을 피해 베리아로 왔던 길을 다시 되돌려 예수님으로 야기 된 위험지역인 유다 지방으로 돌아가자는 예수님의 제의에 대한 도마의 반응이다.

역시, 급한 성질에다, 막가파식으로 반응을 한다. “주님과 함께 죽으러 가자!” 다른 제자들에게 디도모라 불리우는 도마가 내 뱉은 일성이다. 이 상황에서 도마를 평해 보면, 솔직한 성품이라기 보다는, 아마도 다른 제자들에 비해서 자신을 먼저 나서서 드러내야 하는 성격인 것 같다. 또 다른 일 면은 예수님 하시는 일이 자신의 큰 기대에 못 미치거나 기대에 심히 어긋 나서 매우 못 마땅한 심기를 가지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여기에서 도마를 포함해서 다른 제자들도 예외없이 예수님을 베드로가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리스도”라고 고백한 의미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무지한 상태였다. 그렇다면, 도마의 불만은 아마도 가롯 유다가 가졌던, 불만과 똑 같이 이스라엘을 로마의 폭정에서 해방 시켜 줄, 힘 있는 세상 왕을 기대하지 않았는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이러한 무지한 도마의 돌출적인 두 번째 행동은 요한복음 14장에서도 유월절을 앞둔 최후의 만찬 장소에서도 익히 엿볼 수 있었다. 예수께서 하늘에 먼저 가서 장차 제자들을 위해 예비 처소를 마련하리라고 언급했을 때, 도마는 “주께서 어디 가시는 지 모르는데, 우리가 어찌 그 길을 알겠습니까?” <요하복음 14: 5> 라고 생뚱 맞은 언급을 했다.

그때, 예수님은 도마의 불만스러운 질문에 매우 소중한 말씀을 성경에 남기신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를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한복음 14: 6>

멋지지 않은가?
정말, 바보 같은 도마의 퉁명스러운 질문에도, 예수님은 개의치 않으시고, 오히려 진리의 핵심 말씀으로 복음의 역사를 완성하시고 계신 것을 알 수 있다. 소위, 세상의 선각자로 나타났다 사라진 부처를 비롯한 종교계의 어떤 태두들도 진리의 깨달음을 찾아서 혼신의 노력으로 생명의 빛을 좇아 갔지만, 오직 예수님만 자신을 일컬어 길이요 진리요 또한 생명이라고, 자신이 천국의 문을 열 열쇠을 가진 하나님의 절대 권위를 가진 자임을 분명히 하고 계심을 알 수 있다.

어쨌든, 다시 도마로 돌아 가 보자.
세 번째 도마의 예수님에 대한 불만은 예수가 십자가에서 천하의 죄인 중에 죄인으로 돌아 가신 후, 다시 부활하신 뒤의 사건이다. 예수께서 살아 생전에도, 도마가 생각하는 부족한 예수님께 가진 불만은 있었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예수께 거는 기대는 가지고 있지 않았겠는가? 그런데, 그의 기대는 예수께서 아무 저항도 못한 채, 어리석고 부끄러운 십자가형으로 돌아 가셨을 때 ‘역시나’ 하면서 그가 세워 놓은 원대한 꿈과 현실적 계획이 산산 조각나게 된 셈이 되었다.

어쩌면, 그는 아까운 청춘을 깡그리 바쳤던 힘없이 십자가에서 사라진 예수께 대해서 억울한 감정과 더불어, 바보 같은 자신의 판단과 모습에 대해서도 분노를 금치 못한 상태였을 것이다. 비좁고 꽉 막힌 동굴에 갇힌 감정?
그 당시 유일하게 의지했던 예수를 잃어버린 도마는 탈출할 퇴로가 끊긴 상태로 거의 최악의 정신적 공황상태를 겪고 있으면서 이후에 들어 닥칠 불안의 두려움에 온몸을 떨었을 것이다.

그 때에 다른 제자들에게서 예수님께서 부활하셨고, 부활하신 예수를 만났다는 소식을 전해 듣는다. 그 순간 도마는, 공황상태의 마음에다, 그의 동료들 부터 전해들은 소식으로 인해서 마지막 남은 인간적 자존심 마저도 여지 없이 꺾이게 되는 수치감도 느꼈을 것이다. 억지 춘향격으로, 도마는 예수님이 부활했다고 말하는 제자들에게 부활에 대한 확실한 증거를 요구하게 된다. 그러면서 “내가 그 손의 못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못하겠다”고 말한다.

이는, 아마도 추측컨데, 그래도 자신의 입지가 예수 왕국에서는 다른 예수 제자들 보다 높은 자리에 있다는 나름대로의 자고가 있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그래서 나서서 뻐기기 좋아하는 도마가 부활한 예수를 먼저 만나서, 동료 제자들에게 이 복음을 전해 주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부활한 예수를 만나기는 커녕, 동료들로 부터 소식을 전해 들은 것에 대해서도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은 것이 아닐까 하는 짐작을 해 본다.

이 순간, 도마는 어느 다른 제자 보다도 억울한 감정과 비참한 자신의 처지를 바라보게 되고, 깊은 심령으로 한탄하고 있었을 것이다. 예수님은 그의 상한 심령 앞에 드디어 나타나신다. 그의 억울하고 깊은 비탄과 수렁에 빠졌던 심령이 비로소 십자가에 못 박혔던 예수를 그 자리에 초대하게 한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도마와 다른 제자들이 다 함께 있을 때 나타나셔서 말씀하시기를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하시고, 도마를 향하여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고 말씀하실 때에 도마가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십니다”라고 고백을 하게 된다.

어쩌면 이 자리에서 예수께서는 도마에게 또 성령의 음성으로 이렇게 말씀 하셨을 것이다. “도마야, 내가 너 보다 먼저 너의 억울한 그 자리에 서서 이미 너의 아픔을 대신 짊어졌다. 이제는 안식하라, 자유하라, 평강을 누려라!”

부활한 예수님의 십자가는 이제, 도마에게는 영원한 안식이 되고, 위안이 되고, 또한 하나님 보좌의 오른 편에 초대 받는 하나님 영광을 나누는 축복을 누리게 된다. 우리에게는 오직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 외에는 자랑할 것이 없다. 그것은 그 십자가 만이 우리를 하나님 영광에 참여하는 면류관이기 때문이다.

십자가가 상한 심령의 도마를, 그분의 이름을 지키기 위해 환란과 핍박에 처한 우리를, 하나님 보좌의 영광으로 인도한다. 엎드린 도마를 일으키시는 예수님은 또 다른 소중한 믿음의 말씀을 남긴다.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 되도다” 
<요한복음 20: 29>  아멘!

♡ 안응 곽계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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