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신의 경지를 논한다!
과연 진정한 신을 이야기하고자 할 때, 이성적 논리로 그 진의를 논해서 결과에 다다를 수가 있을까? 신은 결코 인간이 생각하고 주장하고픈 범주 인에 머뭇시는 분은 결코 아니라는 것만은 분명한 것이 아닌가 여겨집니다.
이것이 절대진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주장하기는 이것이 절대진리라고 단정하는 것보다는 훨씬 쉬운 이해도를 요구하는 것 같습니다. 어쨌든간에, 전지전능하고 무소부재한 절대존재인 신의 경지에서는 ‘이다’, ‘아니다’라는 논쟁조차도 부질 없다는 생각도 듭니다.
창조주 신과 피조물인 인간의 차이를 분별하는 분별력이 신앙의 첫걸음이 아닌가 여겨집니다. 분별력이 영원과 찰라, 죄인과 거룩한 존재의 차이, 완전체와 불완전체의 존재감을 분별하는 것이라면 소크라테스 형이 가르친 의미로 “모른다”는 고백이 분별력의 진수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인간으로서 신을 안다는 것은 더구나 허락되지 않은 게 인류 역사가 증명해주고 잏는 진실입니다.
참 신을 찾는 것이 종교의 소명이라면 소명이 되겠지만 기독교를 비롯한 어떤 종교도 100% 신을 구현하기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종교의 우수성과 유일성과 차별성을 꼭 찝어서 주장하기에는 자체가 모순을 안고 있는 것이라고도 여겨집니다.
기독교의 특징인 모두가 죄인인고로 예수가 가신 십자가 길을 각자의 짐을 지고 따라가는 것 외에는 세상에 참 기독교를 주장할 어떤 자랑도 없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기독교는 타 종교와 비교해서 우월할 것도 열등할 것도 없습니다.
기독교가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진다한들 진리의 행보에는 하등의 변화가 생길 일도 원통할 일도 없습니다. 절대적 존재는 어떤 조건과 상황에서도 영향을 받지 않기 때문입니다.
인류가 멸망을 당한다해도 신의 존재감에는 어떤 변화도 없을겁니다. 그는 스스로 존재하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인간과 신의 관계? 전부이기도 하고 아무 관계가 아니기도 합니다. 전적으로 신의 뜻에 달려 있다는 사실만이 유효합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요, 인격자요, 시작과 끝이요, 영이신 신? 그 완전한 신을 어찌 불구자인 인간의 좁은 틀 안에 집어 넣고 이것이다 저것이다 논할 도리가 있겠는가? 신의 경지에서 인간의 모든 것이 허사가 아니겠습니까?
인간은 누구나 불완전하기에 누구도 완전한 진리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진리를 향한 모든 수고는 결국 완전으로 향하는 과정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무신론, 범심론, 유일신 등도 결국은 시냇물이 강이 되고, 강이 모여 바다로 하나 되어 모이듯 하나님이 섭리하시는 다양성의 도구로 쓰일 뿐이라는 생각을 감히 드려봅니다.
♡도천 곽계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