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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신의 경지를 논한다! -1

“‘예수’는 닳고 닳은 종교 용어의 하나가 되었다

저는 예수가 누구인가를 알고자 하는 데 감수성 예민한 청소년, 청년 시절을 다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애초부터 예수라는 한 실존인물이 신이라는 말에 제 나름의 생뚱맞은 물음표를 달았습니다. ‘그건 말도 안 돼! 광대무변해보이는 우주를 만든 신이란 존재가 어떻게 한 사람일 수 있나?’

그 예수라는 한 존재가 모든 세대의 사람들, 특히 철학자나 예술가들이 그토록 만나고 싶어하던 그 신이었다는 이야기가 진짜라면, 기독교는 그저 종교의 하나일 수만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만약 기독교의 핵심가치가 예수라는 한 사람을 신으로 믿는 데 있는데도 기독교가 종교의 하나에 불과하다면, 그 또한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신앙이나 종교 차원에서 상식적으로 쉽게 언급되는 예수 이전에 최대한 실제 역사 속의 예수를 만나고 싶었습니다. 종교적으로 미화되고 과도하게 치장된 예수로는 아무리 신이다, 하나님의 아들이다 해도 미심쩍게만 여겨졌습니다. 이도 저도 아니게 종교적 위인 정도로 취급받는 예수 역시 적어도 제게는 이미 닳고 닳은 종교 용어의 하나일 뿐이었습니다.

종교의 예수 VS 역사 속의 예수

그러다 보니 먼저 실제 세계사에서, 비기독교인들의 저작에서 예수란 분이 실존했다는 흔적을 찾고자 했습니다. 탐구의 결과는 고대 인물들 가운데 예수라는 존재보다 더 분명한 역사성을 가진 존재는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예수의 역사성을 의심한다면 우리가 잘 아는 거의 모든 고대 인물들의 역사성을 의심해야 할 정도입니다.

더 나아가 예수만큼 인류사의 모든 영역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존재도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철학자 칼 야스퍼스는 유명한 과거 인물의 실존 여부는 그가 남긴 영향력으로만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최초의 어떤 이미지가 없이는 영향력이라는 것 자체가 발생할 수 없습니다. 전세계에 골고루 퍼져 있는 수많은 교회의 존재만으로도 예수라는 분이 실존인물이라는 역사성은 확고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었습니다. 타종교들에서 말하는 신적인 존재들과 예수를 어떻게 차별화해서 이해하고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문제였습니다. 특히 지금은 종교의 영역에서도 다원주의를 주장하는 시대입니다. 종교다원주의는 말 그대로 여러 종교가 주장하는 진리들이 모두 동등하게 정당하다는 다원성을 인정하자는 종교철학의 일종입니다. 모든 종교는 하나님께로 혹은 궁극적 실재로 가는 길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기독교만이 유일한 구원의 길이 아니라 다른 종교들에도 나름대로 구원의 길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보통 신의 존재를 만나는 것을 구원으로, 그 만남의 통로를 종교라고 여깁니다. 그래서 역사 속의 예수를 찾는 작업 못지않게 타종교들과의 비교를 통한 예수의 유일성에 대한 질문을 놓고 씨름하는 작업이 진행되었습니다. 결국 이 부분에서도 답을 찾았습니다.

불교는 원래 무신론이며, 나중에 대승불교가 기독교의 영향으로 신적 존재자 신앙을 도입해 부처를 신격화했습니다. 힌두교는 자연세계에 속한 범신론적 신들을 주로 믿는데, 물리적 우주와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는 범신론적인 신들이 물리적인 우주를 만들 수는 없습니다. 힌두교에서 최고의 신으로 믿는 브라만 역시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중성의 비인격적 존재여서 도덕의식을 가진 인격적인 인간을 창조한 신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논리적으로만 보면, 기독교의 공동체적인 삼위일체 하나님이 아닌 이슬람교의 단일신 알라에게서는 공동체적인 상호관계를 전제로 하는 사랑이라는 가장 주된 창조질서가 만들어질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세계의 주요 종교들이 다 신에게 이르게 해주는 동등한 진리다”라고 주장하는 종교다원주의는 자체적으로 모순을 안고 있습니다. 세계 4대 종교인 이슬람교와 불교, 힌두교, 기독교만 해도 신관이나 구원관에서 서로 배타적인 교리를 갖고 있어 상호 모순적입니다.

종교들이 실제로는 서로 모순된 가르침을 갖고 있다면, 그들 모두가 다 틀렸거나 그들 중에 하나만 맞다고 보아야 합니다. 결국 어느 종교나 진리 체계가 실제로 창조주 신과 인간의 본성, 그리고 우주와 이 세계가 조성되고 운영되는 원리와 실체에 대해 가장 이치에 맞는 주장을 내놓는가가 관건입니다.

이 책은 바로 이 관건을 확인하는 데 필요한 주제들을 다양한 질문과 대답의 형태로 다뤘습니다. 질문이 있을 때 답을 찾을 수 있고, 진실한 질문은 진실한 답을 찾게 해줍니다. 제가 구도자로서 방황할 때 기독교에 대해 품었던 대부분의 질문들이 이 책에 다뤄져 있습니다.

‘하나님은 정말 존재하는가? 세상이 그냥 우연히 생겨났다고 믿는 게 창조론보다 더 자연스럽지 않나? 성경이나 신화나 다를 게 뭐가 있나?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공평한 존재인가? 사람이 죽은 후에는 정말 천국과 지옥 중 어느 한 곳으로 가게 되나? 불교도 부처 믿고 천당에 간다고 하지 않나? 종교가 이렇게도 많은데 어떻게 기독교의 예수만 유일한 구원자라고 우기나? 복음이 전해지지 않은 시대 사람들의 구원은 어떻게 되나? 세상에 정말 종말이 오나? 예수를 믿고 나서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한 번 믿어 천국 티켓을 따놓고 나면 어떻게 살든 천국은 가나?’

이런 질문들에 대해 기독교변증서의 내용들로 답해나가는 과정에서 무엇보다 기독교에 이 세계를 만든 창조주 하나님이 계시고, 그 하나님은 역사 속에 자신을 한 번 나타내셨다는 사실을 논의의 가장 주된 기반으로 삼았습니다. 만약 기독교에 이 세계를 만든 창조주 하나님이 계시다면, 그 하나님이 저자로 자처하신 기독교나 성경은 그저 종교의 하나가 아니라 창조질서 그 자체라고 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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