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화의 열매, 성령의 열매!
늘 부족한 게 우리들이지요. 어쩌면 운명적으로 신 앞에서는 부족해야 하는 가 봅니다. 성경에는 칭의 다음에는 성화의 길고 지루한 과정이 있지만, 결코 그 마지막 완성에는 이를 수 없다는 게 또한 진실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가 감히 우리들 입으로 성화를 함부로 언급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 봉착 됩니다. 그래도 애쓰고 노력해서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성화의 내용이 아닐까? 하는 여전히 우연이라는 진실에 애착을 가져야한다면, 정말로 우리는 구제 받을 수 없는 한심한 존재로 추락하는 것이지요.
무엇을 시도한다해도 우리는 완전한 성화에 다다를 수 없습니다. 죄인인 우리를 죄 없다 하시고, 의롭다고 하신 칭의처럼, 성화도 이미 이때에 다 이루어진 것은 아닐까요?
비록, 우리는 죄인의 신분에서 벗어날 수 없지만, 의롭다 선포하심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키신 것처럼, 우리를 거룩하다고 하심으로 하나님 자녀로 우리를 왕 같은 제사장으로, 하늘의 백성으로 하나님 자녀로 입양하신 것이지요. 이미, 우리는 의로워진 이상, 더 이상 후퇴는 없습니다. 칭의와 동시에 성화도 이루어진 겁니다. 칭의와 성화는 순전히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지는 겁니다.
하나님의 뜻이란, 창세 전에 계획 되고, 완성된 것입니다. 성화는 하나님의 우리들을 향한 긍휼하심과 은혜 위에 우리 선택된 인간의 선택과 선한 노력의 합작품으로 이루어진다고 정의하고 있고, 여전히 인간의 선한 행위에 목을 메어 달고 있는 게, 소위 현대 정통교회의 한심한 믿음의 현 주소요, 실정입니다.
그래서 현대 정통교회는 모두가 자본주의 기업조직 이론의 헛 된 환상에 젖어서 현실에 안주하지 못해서 안절부절 못하는 철없는 아이에 지나지 않게 된 겁니다. 절대로, 절대로 단언하건데, 인간의 어떠한 노력과 선택과 시도와 도전에도 선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이 가정을 기반으로 생각해 보건데, 성화는 전적으로 하나님 은혜로 이루어지는 겁니다. 순전히 공짜로 성화의 의복을 입혀지는 것이 인간의 진면목입니다.
그렇다면, 소위, 구원파가 주장하듯, 칭의 이후, 그렇게 무책임하게 굴어도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 하는 논리에 대해서는 어떻게 정리를 해야하는가 하는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자존심이 상하는 일인지는 몰라도 근본적인 구원의 문제에 대해서는 구원파의 주장에 매우 일리가 있다고 여겨진다. 이 점, 아직 필자는 조예가 깊지 않기 때문에 단언은 못하겠지만, 구원은 은혜요, 공짜라는 근본 의미에서는 부인할 수 없는 진실을 담고 있는 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원파의 주장 가운데서 구원에 대한 부분이 하나님의 의도에서 벗어나서, 진리는 외면하고, 인간적인 시각에서 위로를 받고자하는 의도가 강하기 때문이 아닐까? 성화란, 인간 스스로의 어떠한 의도와 시도와는 상관이 없이 오직 하나님의 뜻 안에서, 하나님 은혜 안에서만 해석이 되고, 적용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피조물인 인간의 구원 사업은 오로지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의 고유한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성화란 우리가 정의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열매처럼 그 열매로 가늠해야 할 것입니다.
성화는 우리의 선택이나 노력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께 달려 있을 뿐입니다. 믿음도 전도도 성화도 모두 하나님 섭리의 한 부분일 뿐입니다. 성화를 추구하려는 자,
교만의 죄의 아래에 놓이게 됩니다. 당신의 성화는 전적으로 주님의 절대 권위 아래에 놓여 있기 때문입니다.
♡ 안응 곽계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