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올의 난세일기
도올 김용옥의 어떤 책은 상당히 난감하다. 종횡무진 동서고금 모든 지식의 총망라로 자신의 주장을 증명하니 인용을 할 수도, 하지 않을 수도 없다. 좋게 보면 엄청 친절한 글인데 가끔 내게는 불친절하게 보인다. 니체식으로 말하자면 “나는 왜 이렇게 현명한가, 나는 왜 이렇게 영리한가, 나는 왜 이렇게 좋은 책을 쓰는가.”다.
선생의 인간적인 면모를 좋아 한다. 특히 책이 발간되면 정성껏(?) 그린 동양화 서명을 보내주는데 내 가슴이 찢어진다. 지난번 선생 생애 최초의 소설집 『슬픈 쥐의 윤회』는 양장본이 아님에도 기암괴석에 낙관까지 찍어서 나를 감동시켰다. 소설마저도 선생 특유의 교훈을 설파해서 나는 울다가 웃다가 제정신이 아니었다.
이번에 선생의 『난세일기』가 발간되었다. 책은 작정하고 썼다는 느낌이 강한데 주장보다는 호소에 가깝다. 나는 책을 분류해서 오전에 정독을 하고 오후에 속독을 한다. 이 책은 며칠을 정독했는데 쓰기가 난감했다.
2023년 4월 24일로 시작하는 일기형식의 글은 5월 24일까지 한 달간 쓰여졌다. 수많은 주제 속에서 난세로 불리는 이 시대의 문제를 분석한다. 생각이 다른 일부 독자들에게 도올의 주장은 거부반응을 부를 수 있다. 그러나 상당한 설득력이 있으니 수용할 것은 수용하고 내칠 부분은 내치면 된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를 이토록 신랄하게 분석한 글도 찾아보기 힘들다.
그가 말하는 난세의 원인은 ‘지도자’들 때문이다.
한국의 윤석열, 미국의 바이든 등 작금의 세계 지도자들의 지도력은 저열하다. 그는 문제 제기뿐만이 아니라 대안도 제시한다. 현실과 맞서는 당당한 국민의 의식이 난세를 극복하는 힘이니 깨어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일기의 첫 장은 성균관 대학교의 교수와 연구자 248명의 시국선언이다. 저자는 1960년 4.19와 4.25 대학교수단 시위가 부른 ‘대통령 하야’를 언급한다. 이번 시국선언에 ‘대통령 하야’는 없었다. 그러나 진보정권의 행태에 실망한 많은 이들이 윤석열에게 새로운 리더십을 기대했다가 경악하며 실망한 것은 사실이다. 그를 두둔하고 옹호하는 보수도 지도자를 제대로 뽑은 것인지 불안해하는 모습이 보인다.
5년만 버티고 다음 지도자를 교체하면 돤다고 생각하기엔 그의 지향점이 너무 명료하다. 그는 국민과의 대화를 거부하고 이미 토론이나 타협의 장을 벗어난지 오래되었다. 부자들이 마음 놓고 더 부자가 되는 사회, 국민의 공적 조직을 사유화해서 경쟁 구도로 모는 효율성의 지향, 북한이 정신 차릴 때까지 계속 압박해야 한다는 위기 고조, 일본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과거 침략을 묻고 용서해야 한다는 것 등등
게다가 초과생산된 쌀의 정부매입에 거부권을 행사함으로 농민을 더욱 빈곤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미국의 이윤 추구가 한국의 부자를 배부르게 두지 않을 거란 사실은 명약관화다.
이미 미국은 전쟁 위협을 빌미로 한국과 대만의 대기업에 압박을 넣고 있다.
저자는 여기서 조선왕조실록의 연산군과 광해군의 시대와 현대의 유사성을 언급하고 다시 성찰로 들어간다.
이 책의 눈 여겨 볼 부분이 바로 이 성찰이다.
특히 고조선부터 현대의 K-콘텐츠까지 고유문화의 저력에 대해 풍류를 실증적으로 설명한다.
미국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행한 연방의회 연설을 분석하면서 우리 현대사의 흐름을 세계사의 시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한 것도 역사 제대로 알기에 큰 도움이 된다.
전후 히틀러의 자살과 일본 천황의 비굴한 생존을 대비하며 일본의 반성과 책임 문제가 아직도 해결이 안 되는 것은 미군정에 의한 천황제의 존속이며 이것은 다시 침략의 야욕을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한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오염수의 해양방류를 어떻게 할 것인지도 귀기울일만 하다.
일기로 쓰여져 어렵지도 않고 읽을거리가 풍성하다.
역사는 치세와 난세를 교차하며 전진한다.
진영논리를 떠나 두 눈 뜨고 현실을 직면하는 것이 난세에 대처하는 방법이다. 『난세일기』를 추천한다.”
-김미옥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