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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와의 만남(ll)!

<베드로 후서 3:20-22>에
다음과 같은 말씀이 써여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세상 더러운 것을 피한 후에 다시 얽매이고 또 극복을 해도
결국에는 처음 구주를 알 때 보다 더 못하다.

차라리 의의 도를 모르는 것이, 의의 도를 알고 난 후 거룩한 명령을 저버리는 것 보다 낫다.

이것은 개가 그 토한 것을 다시 먹는 것과, 돼지가 씻은 몸을 진흙탕에 가서 도로 눕는 것과 같다. 라고 했다.

이는 예수님을 진리로 알고 믿고난 구원 받은 후에 믿음과 진리의 편에 서서 계속 지속 되지 못 하고 오히려 그릇 행동하면서 죄를 짓는다면,
이는 진리를 모독하는 것이며, 예수님의 우리를 사신 피값을 무용지물로 만든다는 이야기이고 그에 대한 심판은 되물림과 용서가 전혀 없다는 엄한 경고에 해당 한다.

이와 유사하면서도 더 구체적인 예가 <히브리서 10:26-27> 에 잘 언급 되어 있다.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고의적으로, 계획적으로: deliberately) 죄를 범한 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이들 대적하는 자를 소멸할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죄를 짓되 알면서도 거슬려, 대적하여
짓는 자들의 죄를 특별히 지적하여 설명해
주고 있다. 우리는 연약한지라, 예수님을 속에 품고 있더라도 알게 모르게 여전히 일상에서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그러나 죄를 지을 때마다 우리는 다시 하나님 앞에 나아가 회개하고 자복함으로서 점진적인 의와 거룩과 하나님 영광의 푯대를 향해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

좋은 예가 다윗왕과 사울왕의 예가 아니겠는가?
다윗도 큰 잘못을 저지른 것은 사울왕보다 더 중할지라도 다윗은 하나님께 자복하고 결국은 하나님어 영광에 합류하고저 했지만, 사울왕은 진정으로 하나님 앞에 자복하기는 커녕 자신을 앞세워 짐짓 하나님의 준엄한 명령을 거역하고
오히려 핑계만 일삼지 않았는가.

회개없는 진리는 없다.
교만하고 스스로 높아지고저 하는 자에게는
용서도 허락 되지 않고, 마지막에는 필히 불심판이 기다리고 있다. 알면서도 고의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은 모두가 마귀의 하수인일 뿐이기에 더 이상 지체없이 불심판을 받을 쭉쟁이로 분류된다는 것을 명심하고, 분별하는 영을 하나님께 깊이 간구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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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log.naver.com/kwack0357/130156843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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