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어서 좋은 것, 하나 그리고 둘!
“나이가 들면 불편한 것이 많아진다”는 사실을 당연시 하는 것이 사회 일반적인 생각이다.
내가 좋아하는 테니스를 나이가 들었다고, 무릎이다, 어깨다, 엘보다 하는 식의 이런저런 핑계로 테니스를 멀게 하는 것이 불편한 것이고,
언젠가는 하고 벼르고 도전하지 못 했던 젊은 날의 꿈을 접어야 한다는 억울함이 불편한 것이다.
새로이 출시되어 떠들썩한 신 미디어 통신상품이 그렇고,
또 세상에서 떠들어 대는 SNS 라는 사이버 커뮤니티가 불편하게 한다.
불편(不便)이란 어느 면에서는 하고 싶은 데 못 하는 상황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이가 들수록 행동거지가 제약을 받고 더불어 생각과 꿈을 접는 빈도수(頻度數)가 많아지게 된다.
평소에 익숙하던 것이 어느 사이 관계없는 것으로 인식되어 생수(生疎)하게 여겨지는 것이 불편이다.
어느 원로님께서 중요한 모임에 오시면서 평소의 그답지 않게 갑자기 수다스러울 정도로 흥분에 들떠 하신다.
이유를 들어 보니, 오신 길을 운전사가 편안히 모셔다 주는 자가용을 버려둔 채, BMW로 오셨다는 것이다.
Bus+Metro+Walk 해서 오시는 길에 젊은이들에게 오는 길을 물으시면서 전철을 바꿔 바꿔 타시면서
행사장에 무사히 안착(安着) 하셨다는 이야기였다.
아니나 다를까, 무사히 도착하셨는지 확인하는 전화가 집에서 바리바리 울려댄다.
그리고 하시는 말씀이, 그동안 나랏일을 하시느라 과분하게 국가의 은총(恩寵)을 받고 사셨다는 후회다.
이제 남은 노후를 지금까지 누린 것만큼 불편하게 사시겠다는 결심을 하셨다는 그분의 소박한 고백이었다.
나이란 싫든 좋든 불편함을 동반하게 된다.
불편함도 삶의 중요한 일부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불편이라는 친구를 외면하고 살았을 뿐, 한 번도 불편은 우리를 떠나거나 외면한 것은 아니다.
이제 나이가 나를 불편한 친구를 친절하게 데려다 준다. “이 친구 사귀어 보면 꽤 괜찮은 친구야!” 라고 하며
나의 은밀(隱密)한 방으로 밀어 넣어 준다. 마치 아가서에 등장하는 슐람미 여인처럼, 다정하게 다가 와서 나를 꼭 품어 준다.
불편은 슐람미 여인처럼, 피부 색깔은 까맣고 딱딱하지만 속은 잘 익은 호두알처럼, 달고 고소한 것을 알게 한다!
이것이 나이가 들면 좋은 것이다.
나이가 들면 불편을 통하여 비로소 인생의 내면(內面)을
바라보게 하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면 큰 걸음을 못 하는 불편 그 불편함으로 인해
작은 발걸음으로 오래 편안히 갈 수 있음을 이야기 하려다 어느 사이 또 익숙한 다른 길로 빠져 버렸네?
나이는 정말 못 말리는 나의 친근한 반려자(伴侶者)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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