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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눈물의 씨앗이라꼬?

대한민국의 언어인 한글에서는 원래 사랑(Love)이라는 단어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한글이 발명된 이후에 조선시대에 남녀가 사랑을 했을 때에 “당신을 사랑해!” 라는 문장으로 서로 사랑 고백을 하였을까요? 

아니면, 떨어져 사는 부부 간에 소위 편지인 서찰을 보내면서, 서로 간에 “여보 당신 사랑해!” 라든가 중국 한자인 사랑 애자를 발음해서 “워 아이 니(I love you)” 라고 했을까요?

한글 연구의 대가가 아니지만 분명히 이는 아닐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렇다면, 우리네 선조들은 어떻게 사랑을 표현했을까요? 아마도 그립다라든가 보고 싶은 감정으로 표현 했을 법 합니다. 

그러니 우리네 선조들은 사랑이라는 순수 한글이 없으니, 매사를 감정의 형용사로만 표현 했을 것으로 사료되는 거지요. 

“다이도 밝다”, 라고 읊으면, 그래, 달이 밝으면 그게 어때서? 하는 낮은 수준으로 사랑의 코메디를 이루는 것이 우리네 실정이었지요. 

필자가 무엇을 이야기 하기 위해서 이렇게 긴 사랑 이야기를 펼치는가? 의아해 하시지요?

사실은 우리가 연상하는 하나님의 사랑이란 과연 어떤 모습인지를 우리 한국 사람들은 제대로 그려내지를 못한다는 것이고, 그 이유는 사실 한글에서 발음하는 ‘사랑’의 의미가 우리네 정서로는 제대로 잡히지가 않는 지극히 외래어로 여겨지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사실 한국에서 ‘사랑’이라는 단어를 세상에서 제일 잘 어울리게 사용되는 곳이 아마도 어머니와 어린 자식 간의 관계에서가 아닌가 생각 되어집니다. 

어머니가 그의 어린 아이에게 쏟는 정성은 가히 ‘사랑’이라는 단어에 가장 어울리는 행위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어떤 여인도 어머니가 되면 애기의 똥조차도 달게 여겨 지는 것이지요.

그러면, 어머니의 이러한 무한정 쏟아 부어도 부족함이 없는 무조건적인 사랑의 행위가 과연 어디에서 분출 되고 어떤 이유에서 나타나는 것인가?  

그것은 어머니가 자식에게 가지는 정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결국 한국인에게서 사용하는 막연한 단어인 사랑의 실체는 정으로 부터 유래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우리들에게 가지는 사랑은 사실은 한국인들의 정서를 빌어 살펴 보면 하나님의 우리를 향해 가지는 애틋한 정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는 거지요. 어머니가 아이에게 쏟아 부어도 늘 부족한 ‘정’ 말입니다.

창세기 1장에 하나님 사랑의 정을 나타내는 부분을 볼 수 있는데, 이는 매 창조가 이루어질 때마다 반복 되는 말로서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표현입니다.

결국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지은 천지 창조란, 결국은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하는 우리 사람을 향한 애틋한 정, 거부할 수 없는 정 때문이 아니었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엿적에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라는 노래가 한때 유행한 적이 있었지요. 그렇습니다. 사랑은 눈물의 씨앗인 근본 정에서 나오는 겁니다. “사랑은 정입니다.” 

정답게 살아가는 우리 한민족은 고래로부터 이미 사랑의 근본을 실천하면서 살아가는 선택된 이스라엘 민족인 셈이지요. 사랑이 별겁니까? 정입니다. 우리에게는 이미 몸에 베긴 것이 정밖에 없으니까요.

♡ 응재 곽계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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