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소리, 어머니의 영원한 숨소리!
“뿔뤼비오필(Pluviophile): 비를 사랑하는 자(a lover of rain); 비 오는 날을 기뻐하며 마음의 평화를 가지는 자.”
불어로 비를 ‘라 뿔뤼(La Pluie)’라고 한다.
vio 는 라틴으로 ver 의 타동사로, “관찰하다”,
“바라보다”로 해석하고, -phile 은 접두어로 “무엇을 좋아하다”로 해석한다.
그러니, ‘쁠뤼비오필’은 “비를 바라보는 것을 좋아 한다”라고 해석한다.
이 단어를 새삼스럽게 공유하는 이유는 비를 사랑하는 자, 비 오는 날 평화를 가진다라는 내용이다.
아마도, 비 오는 날, 평화를 가지는 자들이 나 이외에도 많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이를 나누고 싶은 심정이지만, 또 한 편으로는 비 오는 날, 온 육신이 욱씬거려서, 우울증에 시달리는 여성 분들이 많다는 거지요.
비 오는 날이 특별한 날이 되는 이유로, 옛날 옛적 수렵시대에 비 오는 날은, 온 집단이 동굴에 모여서 행복한 안식을 취하는 유전인자가 남아서 비가 올 때는 평안을 느낀다고 했지요.
누군가는, 비 오는 소리의 느낌이 마치 어린 아이가 엄마의 양수 안에 머물 때, 엄마의 숨소리와 함께
지내는 모습과 흡사하다는 표현을 했지요.
필자도 비가 오면, 세상이 꽉 채워지는 느낌을 가지면서 평안을 느낀다. 왜 세상이 채워지는 것이 나를 평안으로 인도 하는 걸까? 세상이 비어 있다는 불안한 잠재의식이 필자로 하여금, 스스로 채워야 한다는 책임의식으로 강박감을 가지게 하는 것은 아닐까?
특히 밤에 나리는 빗소리는 압권이다. 잠자리에 누어서 우연히 듣는 빗소리야 말로 필자를 안심하게 하는 것은 정말 세상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특권이다.
“내가 세상을 채워야 한다”는 사명감이야 말로, 마치 높은 산에서 굴러 떨어지는 지구를 등으로 밀어서 다시 정상에 올려 놓는 헛수고하는 거인의 모습과 같다는 것을 왜 모르겠는가 마는, 이것이 인생의 모습이라면, 낸들 어찌할 수 있으랴?
빗소리는 나를 영원한 안식의 세계로 이끌어 간다.
더 이상 부족하지 않을 비로 꽉 채워진 공간, 수고할 필요도 없는, 채워지지 않을 공간이 없는 어머니의 숨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날아가게 하라.
빗소리는 나를 안식으로 인도한다.
-안응 곽계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