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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깨달음을 추구하는가(1)?

깨달음을 의식 세계의 최고봉에 놓는다. 왜 깨달음인가? 무엇을 깨달아야 하며, 왜 깨달아야 하는가? 하는 질문에 우리는 대답을 잃는다.

깨달았다는 사람 조차도 어떻게 깨달았다는 이야기는 해도, 왜 깨달아야 하는지는 대답을 잃고 만다. 깨달음의 중요성을 알아서 깨달음에 정진 한다고 해도, 막상 깨달음을 왜 가져야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뚜렷한 해답이 없다. 

사실 깨달음이 중요하다는 식의 깨달음에 접근하는 것은 누구나 이해하고, 수행하는 것에 대해서는 주저하지 않지만, 과연 깨달음을 인간 가치체계 중심의 틀 안에 넣어서 평가하고자하는 시도는 무언가 합당치 않는 불편함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깨달음은 세상 가치 체계와는 역행해야 하는 진리세계의 가치를 탐구하기 때문이다. 과연 진리에 다다르는 행위에 대해서 인간이 왈가왈부해야 한다면, 과연 그 수준의 관점을 어떻게 설정할 수 있을까? 

분명한 것은 진리에 대한 깨달음에 대해서는 인간의 가치체계의 관점에서 차원이 다른 가치를 감히 매길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무엇을 깨달아야 하는 것인가?하는 깨달음의 대상은 분명히 모든 것을 포함하고 용서하는 진리에 대한 것이리라. 

헬라 시대에는 철학적인 의식에서 로고스라고 했고, 후대에 넘어오면서 여러가지 모양의 종교 행태를 띄다가, 그 모든 것들이 모여져서 그것이 자연이든, 하늘이든, 하나님이든 초월적인 우주적 존재로 넘어가고 있다.

우리가 숨 쉬고 살고 있는 이 지구를 포함하고 있는 우주가 무엇인가? 우리가 우주를 연구할 때, 우주의 근본 구성 요소를 조사함으로서 우주의 근원을 탐구하고자 한다. 우주가 어떻게 생성 되었고, 우주가 어디로 가고 있는가?

우주는 빅뱅으로 생성 되었고, 이후 우주는 빠른 속도로 팽창해 나가고 있다고 한다. 요즘에 와서는 빅뱅에 대한 애매한 이론에 대해서 과연 빅뱅의 근원은 무엇이고, 누가 창조하였는가? 하는 식의 역행하는 이론도 심심치 않게 나타나고는 있지만, 이러한 우주의 근본 속성을 이해한다고 해서 인간 생명 존엄성이 더 근엄하게 되는 것일까? 아니면 결국은 신과 같은 거룩한 존재로 되어지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는 것일까?

우물 안 개구리가, 우물 바깥 세상이 존재한다는 진실을 깨닫는다고 해서 우물 안 개구리의 상황이 무엇이 달라지겠는가? 물론 바깥 세상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예견한 선구적 개구리가 전체와 부분에 대한 분별력을 가졌다는 것 외에는 달라진 것이 없을 것이다.

우물 안 개구리가 전체와 부분을 분별하는 것을 깨달음이라고 한다면, 과연 그 깨달음이 어떤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것일까? 

인간이 총력을 기울여서 우주의 근본 생성 원리를 추구하기 위해 우주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축적해 가면서 우주를 알아가는 과정은 마치 우물 안 개구리가 바깥 세상을 알아가는 과정과 별반 다름이 없어 보인다.

결국, 공통적으로 다다를 수 있는 진리 추구의 결론은 우리 인간과 초월자 사이에 놓인 거대한 갭을 깨닫는 것이고, 전능자인 창조주 신과 피조물인 부족한 인간 간, 전체와 부분을 분별하는 분별력이 될 것이다. 

이 분별력을 통해서, 인간의 좌표설정을 분명히 한다면, 전체에 대한 고차원 좌표를 이해하게 되면서 전체와의 관계가 이루어지게 된다. 

그 전에는 부분으로서의 부분이었다면, 이후로는 전체에 연계된 부분으로 승화 되는 것이다. 결국은 전체  안에 부분이 위치하게 되면, 서로 상호교류가 일어나게 되고, 급기야는 융합이 되어 부분은 전체 안에서 사라지게 마련이다.

깨달야 하는 이유는 진리에 융합되기 위함이다. 그래서 부분인 자아와 인격이 아니라, 전체인 진리를 나타내게 하기 위함이고, 이것이 진리의 영광에 합류해서 진정한 진리를 누리기 위함이다. 이것이 의식 세계에서 깨달음을 최고의 추구 대상의 반열에 올려 놓는 이유라 하겠다. 

♡ 응재 곽계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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