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지성에서 ‘우리와 나’!
집단지성의 시대에 ‘우리와 나’에 대한 개념 정리가 분명하게 되어야 할 것 같다.
겉으로는 우리라는 집단 개념이 더욱 뚜렷하게 발휘 되고 있는 것 같지만, 속을 잘라 보면, ‘나’라는 개인의 능력이 최대로 발휘되고 있는 것이 집단 지성의 특징이다.
물론, 그 개인의 능력이 발휘 되게 하는 동기는 세상을 바꾸는 스티브 잡스나, 엘른 머스크 같은 세기의 탁월한 인물의 출현에 의한 것임을 부인할 수 없다.
집단지성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일반인으로서의 ‘나’라는 존재는 우선 최소한의 자격이 있어야 한다. 이 자격은 디지털 미디어 사용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마치 운전 면허증과 같이, 디지털 정보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에게 필수적 조건이 되고 있다.
물론 그 중에는 자가용을 손수 모는 사람도 있고, 기사를 두는 경우와 대중 교통 수단을 이용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 시대의 화두가 되는 창의와 혁신을 표방하는 디지털 융합 시대에는 예외 없이 시대적 변화의 흐름의 적극적으로 동참하지 않으면 시대의 낙오자가 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누구는 세기적 인물로 우뚝 서는데, 누구는 시대의 낙오자로 갈라서게 하는 부익부 빈익빈의 현상이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 또한 이 시대의 아이콘이 아닐 수 없다. 어차피 세상은 불공평한 거니까. 재미 있는 현상은 디지털 세대에 속한 사람들 조차도 이러한 불공평 현상은 갈수록 두드리진다는 서글픈 현실이다.
그러한 불공평한 현상은 디지털 시대를 나타내는 집단지성의 특징 중에 하나는 생존에 목슴을 거는 절박감이라 할 수 있다. 직업 전선의 최전선에서 목숨을 건 생존 투쟁에 전력을 해야하는 절박감을 지속할 수 있는 사람에게는 절대 절망에서만 만날 수 있는 어마어마한 보이지 않는 손의 도움을 얻을 수 있다. 그것은 평범한 일반인들이 결코 경험할 수 없는 통찰력이나 영감이라고 한다.
또 다른 불공평의 특징은 소수에게만 주어지는 인류애로의 발로에 의한 것이다. 지금 이시대를 이끌고 있는 세기적 인물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적인 꿈은 지속적인 인류의 유익한 생존을 위한 지구적 비전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평범한 일반 인들은 어떻게 이 시대의 불공평을 극복하고, 삶을 유익하게 꾸려 갈 수 있을까?
누구는 이런 생각도 할 수도 있다. “차라리 디지털 미디어를 전혀 모르고 사는 사람이 행복할 것이다.”
100 %, 그 억한 심정은 이해가 가지만, 100 %, 그에 동감할 수 없는 것이 필자가 가진 견해다. 이 시대는 앞으로 가지 않고, 머무르려 의도 한다고 해도 한 곳에 정지해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도 모르게 뒤로 떠밀려 가서 자기 존재가 사라지게 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이를 디지털을 모르는 무지한 자들에 대한 ‘블랙홀 작용’이라고 부른다. 최소한 자기 존재라도 확인하고 싶으면, 무슨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디지털 미디어라는 생각의 속도로 달리는 열차에 발을 걸쳐 놓기라도 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집단 지성 시대에 ‘우리와 나’에 대한 분명한 정의를 내리고 사는 자체가 행운이다. 비록 나라는 존재가 부족하고 미완성이라 할지라도, 우리라고 하는 집단지성의 미디어 수단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는 선으로 참여하게 된다면, 집단지성의 일원으로서 집단문화의 수혜자가 된다.
비록, 자신은 아날로그 수준에서 머무르고 있으면서 아날로그식 삶의 방식을 고수한다 할지라도, 아날로그 디지털의 융합적 흐름에 대한 열린 마음만 있어도 언젠가는 시대의 파도 타기를 즐길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본다.
아날로그를 사는 것은 좋지만, 적어도 디지털을 조금이라도 경험하면서 이해한 가운데, 아날로그를 선택하라는 이야기가 된다.
디지털 변화에 몸을 실은 가운데, 아날로그를 선택하든가, 버리든가, 하는 것은 주인 의식을 가진 자로서의 태도 이지만, 디지털 변화에 발도 들여 놓지 않은 사람이 아날로그를 고집한다는 것은 시대에 뒤쳐진, 게으른 낙오자에 불과 하기 때문이다.
시대의 변화를 무서워 하지 말고, 주인의식을 가지고, 당당히 주인의 자세를 가져야 하는 것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최소한 갖춰야 하는 예의가 아닐까?
♡ 응재 곽계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