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과(生命果), 내 여인이여!
인간은 구원을 위한 대상이지만 또 다른 한 편으로는
멸망을 위한 대상이기도 하지. 짐승보다 더 천박한 무리들, 과연 지구상에 몇 사람이 구원의 반열에올라 하늘 영광에 참여할까?
이 모두가 하나님의 고유한 결정 소관이기에 다만
나의 십자가를 지고, 하나님의 하해 같은 은혜만 바라는 바이다.
피조물인 인간은 하늘과 땅 사이에 위치하는 존재로 불완전하게 지어졌기에 늘 무언가를 완성하기 위해 갈망하고 또 목말라해야 하는 시지프스 형벌의 운명으로 살아가는 죄인의 존재이기도 하다.
영원히 완성되지 못할 불완전한 인간은 늘 결핍의 딜레마를 달고 살아야 하기에 누구나 예외 없이 자기 십자가와 올무를 짊어지고 끊임 없이 무언가를 욕망하고 추구하며 살아가기 마련이다. 그것이 스스로 존재할 수도, 해결할 수도 없는 인간 군상의 모습이다.
홀로 창조된 인류의 원조 아담이 독처하는 것이 못내 안스러워(not good) 하나님은 그의 갈비뼈를 빼어 그의 반려자 이브를 창조했다. 세상 최초의 남자와 여자 한 쌍이 짝을 이루어 먼저 창조된 에덴동산을 다스리고 지키며 번성하여 지구를 충만하게 하도록 했다.
세상에서 짝을 이루지 못하고 홀로 사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지 않은 상태, 즉 본인의 갈비뼈와 살(flesh)인 자신의 일부분을 결핍하고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여인 없이 사라가는 사람(Man)은 근본 죄인으로서의 결핍과 더불어 자신의 육(Woman)의 결핍까지 더해져서 그야말로 하나님이 보시기에 회개가 필요한 결핍 중의 결핍 상태라 하겠다.
독처하는 사람이 가끔은 외로워하고 또 그토록 그리워하는 것은 에덴동산을 쫒겨나 하나님을 떠난 결핍의 원인이 첫째요, 둘째는 자신의 일부가 결핍되어 반려자(soulmate, 영혼의 동반자)를 잃어버린 결핍으로 인한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지 않은 것 때문이다. 그야말로 ‘죄인 중에 죄인’이 독처하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표현이 아니겠는가?
이제 구원을 통해 쫒겨난 에덴동산과 생명나무를 회복할 일이겠지만 그 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먼저 운명적으로 사람 육의 반쪽인 영혼의 동반자인 여인을 회복시켜야 하리라.
그 여인이 누군지도 또 언제 무엇이 되어 다시 사람과 하나가 될지는 하나님의 예정하심과 계획하심의 큰 틀 안에 있겠지만, 독처하는 사람은 생명과수와 결핍된 여인의 회복을 위해 목마른 어린 사슴이 냇가로 달려가듯 가난한 심령을 달래야 할 것이다.
♡도천 곽계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