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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을 사랑하는 자, 하나가 된다!

구원은 누구의 선택이고, 누구의 책임인가? 

구원은 예정론과 인간 스스로의 선택에 의한 책임론으로 의견이 분분하다. 그래서 이들 간의 적절한 조화를 내세워서 대부분은 양다리를 걸치든가, 아니면 적당히 좋은 것이 좋은 것으로 치부되어 설명하려 들고 있다. 

이거야 말로, 신학이나 종교사회의 가장 큰 치부를 스스로 들어내는 것이라 아니할 도리가 없다. 진리는 적당히 절충해서 결론을 내리거나 양다리를  걸치는 법이 결코 없다. 이 때야 말로 “진리는 모든 것을 하나로 통일 하 것이다”라는 진리의 대전제를 확실히 드러내어 놓아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는 선택에 대한 조건은 마치 인간의 주권적 선택에서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처럼 해석하고 있지만, 한 인간이 선택하는 자유의지 자체가 사실은 전적으로 성령의 선택에 의한 인도하심이라는 사실을 어찌 모르는가?  

인간의 자유의지가 결정하고 선택하는 것은 구원 문제 이외의 어떤 것에는 그야말로 자유의지에 의한 결정이라고 받아줄 수 있겠고, 이는 성령이 관여할 바가 아니지만, 구원의 문제에 있어서만은 창세 전에 이미 예정된 대로 구원의 역사가 이루어 지는 것이다.

그로서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기도하시면서 “주께서 친히 예수께 맡기신 모든 사람들을 구원했다”는 고백을 통해서 시간을 초월해서 창세 전에 예정한 사람 모두에 대한 구원을 완성했다는 말씀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구원에 관한 한, 인간의 의지나 능력이 비집고 들어갈, 아무런 틈새도 없다. 이는 오로지 하나님의 절대권한이요, 전적으로 우리에 대한 하나님 사랑과 긍휼 만이 간여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예정론이라서 전도를 하지 말아야 하고, 책임론이라서 전적으로 선교를 하고 전도를 해야 된다는 이야기들은 정말로 진리를 모르는 한심하고 터무니 없는 신앙인들의 헛수고 하는 토론 중에 하나다. 전도를 하든지 말든지, 선교를 하든지 말든지, 진리는 전혀 변하지 않지 않느냐? 한심한 행위로 인해 떠들어 대는 내용이 어찌 노도와 같이 넘쳐 흐르는 진리의 방향을 바꿀 수 있는가? 전혀 없다. 

우리가 진리 위에 서면, 그리스도 안에 머물면, 누가 방귀를 뀌든 똥을 싸든 무어가 문제가 되겠는가?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시면서 함께 한다면, 내가 아닌 성령이 주인으로 행하시는데, 무슨 두 말이 필요하겠는가? 예정론이든, 책임론이든 간에 모두가 성령 안에서 하나로 성화 되어 나타나게 된다.

주님을 사랑하는 자, 곧 하나님 뜻대로 사는 자는 협력하여 선을 이룰 뿐이다. 그 선이란 의미 안에는 구원도, 전도도, 선교도 다 통일 되어 하나로 나타날 뿐이로다. 

절대로 부분이 진리를 포함할 수 없다.

♡ 응재 곽계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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