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노장은 죽지 않고 사라지고자 한다?
어느 반가운 후배 지기로부터 전화가 와서 지혜로운 노년의 인생 대화를 나누는 중에 두 가지를 이야기했다. 하나는, 죽음을 미리 예비하도록 하는 것이고 둘은, 지금 이 순간을 여기서 즐겨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나름대로 무거운 주제가 될 수도 있었지만 나이가 주는 애틋함과 그리고 경륜이 주는 특권을 고려해서 아주 솔직담백하게 주제에 다가설 수 있었다. 그럼 “무엇으로 죽음을 예비할건가?”에 대한 정의를 내린다면 남에게 특히, 자식들에게 누가 되지 않도록 하며 죽는 것이다.
이런 정의가 설정된 동기는 요즈음 대부분의 사람들이 선택할 여지도 없이 마지막에는 병원중환자실에서 산소호흡기를 부착한 채 어렵게 죽음을 맞이하고 있다는 현실 때문이었다. 연명치료를 거부한다 할지라도 마지막에 살아있는 사람에게서 인위적으로 산소호흡기를 떼야한다는 결정을 어느 가족이 시행할 수 있겠는가?
이렇게 죽음의 현실은 더욱 가혹하게 우리들에게 다가 오게 된다. 본인의 죽음으로 가족들에게 돌아가는 부담을 없이하는 것이 죽음을 예비하는 목적이다. 어쩌면 이런 가정에 가장 적합한 최선의 방식은 300년을 하나님과 함께하다 하늘로 들려올려진 성경의 인물인 에녹과 같이 홀연히 지구에서 흔적도 남기지 않은 채 사라지는 것이리라.
과거 순진했던 젊은 시절에는 필자도 에녹의 팔자를 동경한적도 있었고 또 불가능하다고는 생각지 않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성공하면 행운이고 또 실패해도 더 잃을 것은 없다는 생각으로 무리를 했지만 지금은 그때보다는 더 현실적이 된지라, 에녹이 안될바에야 차라리 노숙자의 신세로 던져지는 것이 더 현실적으로 폐 끼지지 않고 조용히 사라지는 셈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노숙자 죽음에 장기기증 제도를 이용한다면 사라지기 위한 금상첨화의 행운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도천 곽계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