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여, 진리안에서 자유하라!
하나님 말씀을 우리는 인간의 말씀으로 들으려한다. 이를 다른 말로 접근해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편리한 방식대로 이해하려 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고, 더 나아가서 하나님 관점과 인간의 관점은 서로 하늘과 땅만큼 멀리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아니 어쩌면 정반대의 대척점에 있다고 하는 편이 더 올바른 표현이 아닐까?
그래서 한 점의 죄도 없는 예수였기에 가장 흉악한 죄인에게만 적용되는 십자가 형벌을 받으신 것 아니겠는가? 이는 세상의 법은 사망으로 인도하고 하늘의 법은 은혜와 생명으로 인도하는 것과도 마찬가지 정반대의 대척점에 대한 설명을 포함하고 있다.
완전한 하나님의 의미를 불완전한 인간의 의미로 재해석해야 하기에 하나님은 부득이 인간이 사용하는 언어로 성경을 서술되어야 했고, 또한 인간의 모습인 예수로 인카네이션(성육신)하는 절차를 거쳐야하는 나름대로의 극한 수단을 사용하신 것이다.
이를 인간은 비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이 아니라고 해서 상식적으로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한다. 당연한 반응이 아닐 수 없는 것이 하느님과 우리 인간 사이에는 모순이라는 건너지 못할 심연의 바다가 놓여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으로 인도하기 때문에 너무나 깨끗하고 한 점 흠이나 결함 없이 거룩하다. 그래서 천국에 가려면 어린 아이처럼 되라고 했다. 그릇 된 어른의 고집이나 자아 욕심의 때가 묻어 있으면 어린 아이의 쉬운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 것이 인간의 속성이다. 인간 문화란 모두가 다 가면이요, 허울만 좋게 꾸며 놓은 가식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고, 성경에서는 이를 죄로 인함이라고 한다.
이러한 인간의 허울 때문에, 하나님말씀인 생명과 진리가 너무 쉬운데 어려워야 된다는 선입견이 있다. 어려워야 진리요, 가치가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가진다는 것이다. 문화와 관습과 전통이라는 허울과 어려움으로만 훈련 되었고 단련 되어졌기 때문이다.
진리와 생명이란 마치 우리가 일상 들어마시는 공기와 같은 자연스러운 존재다. 마치 어린아이가 그 어미의 젓을 찾는 것과 같이 어렵지가 않다. 어렵고 난해한 것은 모두가 진리로 부터 어긋나는 현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왜냐하면 진리에서는 자유하기 때문이다. 자유함에서는 모든 것이 해답이지, 문제란 없다.
♡ 안응 곽계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