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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의 겸손과 오만?

“우리가 반성해야 하는 것은 깨달음마저도 소유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이 아닐까. 끊임없는 불화와 긴장 그 자체가 지혜인지도 모른다.” – 신영복 –   <변방을 찾아서> 

깨달은 자의 고백은 진심이 될 수도 있지만, 겸손한 마음으로 해서 내뱉는 오해로 비춰질 수도 있는 양면성이 있다. 어쩌면, 이 판단은 깨달음을 소유한 자가 해야할 것이 아니라, 깨달음의 말씀을 듣고 비판하는 입장에 있는 사람들, 즉 누가 깨달음의 충고(?)를 듣느냐?에 달려 있는 것은 아닌가? 

혹자는 깨달음의 말씀을 깨달은 자의 오만으로 볼 수도 있겠고, 혹자는 진심으로 깨달음의 경지에 동참해서 감동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같은 깨달음의 말임에도 불구하고, 누구는 부인하고, 누구는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다. 

깨달음의 말씀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는 자는 심령이 가난한 자요, 통회하는 자가 아닐까? 그리고 깨달음의 말씀을 부인하는 자는 무지한 자요, 교만한 자요, 세상 부자가 아닐까? 사실 깨달음을 소유하는 것은 고민해야할 대상이 아니다. 

왜냐하면, 깨달음은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기에, 깨달음을 소유했다는 소리는 엄밀히 따져서 깨달음을 소유한 자도 스스로 있는 것이지, 상황에 따라 이중성을 나타내어야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깨달음에는 겸손도 오만도 적용되지 않는다. 깨달음은 스스로 존재할 뿐이기 때문이다. 깨달음에는 태양만 있지 거추장스러운 관중은 없다. 

깨달음은 모든 경계를 넘어서 스스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 안응 곽계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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