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듭남의 완성!
일상으로부터의 이탈을 일탈이라고 부르고, 일탈은 우리를 기쁘게 한다. 그러나 일로 부터의 이탈은 우리를 공허하게 하고 당혹하게 한다. 심하면 금단현상도 일어나서 우리를 무기력하게 한다.
현대인들이 공통으로 경험하는 것이 바로 이 금단현상이 아닐까? 금단현상은 주로 애연가들이 금연을 시행하고자할 때에 나타나는 니코틴 중독현상이나 도박중독으로 부터 벗어나고자 할 때 주로 일어나는 현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인들 대부분이 금단현상을 경험하고 있다는 사실은 무슨 형태로든지, 현대인들은 중독증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중독의 원인은 아마도 각 자가 받고 있는 스트레스가 아닐까? 누구는 일로부터 받는 스트레스가 될 것이고, 누구는 가까운 사람과의 오해나 배반으로 인한 소통의 단절로 부터 발생하기도 할 것이다. 우리를 담고 있는 그릇인 이 세상을 광야라고 부른다. 사실 세상이 무슨 죄가 있겠는가? 세상을 장식하고 있는 소위 만물의 영장이요, 생각하는 동물인 직립 보행하는 ‘나’라는 사람이 문제 원인이 아니겠는가?
차라리 사람이 흙이라면, 복잡한 문제도, 그로 인한 지구 상의 스트레스라는 흔한 병도 존재치 않을 것이다. 스트레스를 담고 있는 사람이 문제인 것이다. 어쩌면 사람이란, 스트레스라는 전염성 병균을 담고 있는 세균 폭탄인지도 모른다. 자폭하지 않는 한, 사람 사이에 끊임없이 전염되어 세상을 오염시키는 오염원이 사람인 셈이다.
그러니, 사람을 보고 어찌 가치를 논할 수 있겠는가? 그것은 어디까지나 사람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논하는 한낱 터무니 없는 흥정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인간을 ‘죽어야 비로소 사는 존재라고 설파하지 않았겠는가? 결국 거듭난다는 것은 세상으로 인한 온갖 스트레스로 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라 하겠다.
‘스트레스 프리(Stress Free)’한 세상에서 사는 사람이 어디 한 사람이라도 있겠는가? 그러니, 죽은 사람 아닌 다음에야 어찌 이 일을 감당할 수 있겠는가? 사실 이 세상에 발 담그고 사는 한, 절대로 거듭나기는 불가능하다. 엋더면 이 진실을 깨닫는 그 자체가 거듭남으로서의 첫발을 디딘 것이고, 또한 거듭 남의 완성을 이룬 것은 아닐까? 감히 주장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