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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 대화로 의식 세계를 깨운다!

“데이비드 호킨스의 다른 저서들에서는 의식지도의 구체적인 예들도 볼수 있습니다. ^^” – 이섬규님 – 

오케잇. 

우리는 데이비드 호킨스가 의식 혁명이라는 저서에서 제시한 이 의식 지도에서, 최저로 낮은 의식 수준인 수치심과 최고봉인 깨달음만 가름하는 기준으로 삼는다해도, 다른 상세한 계층 분류는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을 가집니다. 

복잡하게 되면 깨우치는 것 보다는 오히려 지식으로 여겨질까 우려하는 바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먼저 두 개의 큰 기둥인 깨달음과 수치심으로 의식이라는 건축물의 골격을 세워 놓는 작업을 우선하는 것도 좋은 접근 방법이라는 생각을 가지는 것은, 의식이라는 전반적인 시스템에 대한 오감도를 그릴 수 있다는 겁니다.

깨달음 외에도 수치심에 대해서도 특히 우리 스스로를 되돌아 보는 좋은 수단으로 삼아야 함은 물론입니다. 빛을 통해 어둠을 분리하는 것처럼, 또한 어둠을 통해 빛을 깨닫는 계기로 삼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의식 지도를 통해서 다른 하나의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하는 것은 이를 적자생존을 주장한 다윈의 이론에 적용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실 인간을 인간의 사고 및 심리나 철학적 구조를 의식의 계층으로 열거해서 의식 지도에 나온대로 등위를 매긴다면, 높은 곳에 위치한 의식 구조가 낮은 곳의 의식 구조를 지배하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 세상을 이러한 의식 경쟁 논리로만 따진다면, 결국 의식 구조의 우위에 위치한 인간이 낮은 수준의 의식 구조를 가진 인간을 지배하기 마련입니다. 

결국 이 의식 지도대로 다윈의 적자 생존 이론을 적용해서 나름대로 잘 설명할 수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낮은 의식에서는 경쟁이나 투쟁등이 지배를 하지만, 높은 의식에서는 그런것들을 다 포용하는 큰 사랑이니 적자생존같은 힘의 논리가 지배하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예수님도 그 큰 의식을 가지신 분이고, 그 큰 사랑을 실천하신분이니 그런 분에게는 힘의 논리가 지배를 하지는 못할것 같습니다. ^^” – 이섬규님 – 

아멘! 그런 의미에서 의식 지도에서 소중한 것은 빛의 세계인 하늘 세계와 어둠의 세계인 땅의 세계로 분리해서 설명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해야 하겠지요. 

다윈의 적자생존, 즉 생존경쟁의 이론은 마땅히 낮은 의식 부분에 속하는, 땅의 세계에서만 적용 되는 논리가 되어야 합니다. 서로가 완연히 다른 차원의 세계론을 가진다는 의미입니다.

결국 창조론과 진화론을 같은 차원에 두고, 서로 비교 논쟁하는 자체가 모순이라는 것은, 서로 차원을 달리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를 통해서 하나 더 간과하지 말아야 하는 사실은, 하늘 세계가 땅의 세계 보다 높은 차원에 있다는 사실은 창조론과 진화론이 구별 서로 되어지는 것 뿐만 아니라, 땅의 진화론이 하늘의 창조론에 예속 된다는 결론을 유추해 볼 수가 있는 겁니다.

창조 역사 안에 일부로 진화론이 포함 되어 있다는 진실입니다. 

“주일 예배의 제목이 “육적인 자아와 영적이 자아” 였습니다. 나의 갈등과 영육간의 분열의 원리를

잘 이해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감사합니다.”  – 심재용님 – 

의식이라는 심리 키워드를 통해서 육과 영의 세계를 과학적 방법으로 계층화 내지는 분류화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은 굉장한 수확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귀로만 들었던 복음의 진실을 이제는 눈으로 보는 듯, 명확하게 보게 되었음을 감사드릴 뿐입니다. 

“이제사 영,육,혼에 대한 관계가 조금은 이해됩니다. 내 삶에서 진행되는 과정들도 아하!하며 끄덕이게

됩니다.ㅎ”  – 심재용님 – 

저에게도 이번 한 주가 너무나 벅찬 하루 하루였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동안 깨달음으로 영적 진실을 설명했는데, 의식이라는 새로운 키워드를 만났다는 사실입니다. 

깨달음에서 확장이 되어서 수치심까지 전반적인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접근할 수 있었다는 겁니다. 그야말로 야베스의 기도 내용대로 축복에 축복을 더하는 지경을 넓히는 은혜를 받은 겁니다.

물론 깨달음이라는 지고의 의식만 가지고도 영의 세계의 비밀을 설명할 수는 있어도, 영과 육 사이에 놓여 있는 갭이 너무나 커서 이를 구체적인 입증으로 설명하기에는 사실 개념적인 접근 방식이 너무 추상화로 빠져서 별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 겁니다.

마치, “이거, 남자에게 너무 좋은데…”하는, 한 때 유행한 홍보 내용과 유사한 답답함을 느낀 거였지요. 

이 갭을 쉽게 이어 주는 가교가 바로 의식이라는 키워드였습니다. 종전에는 의식이라는 부분을 ‘혼’이라는 용어를 사용해서 영혼육, 세 부분으로 나눴지만, 혼에 대한 과학적 지도를 그리지 못했거나, 뭉뚱거려 설명하는 면이 없지 않은 감이 있어서, 오히려 혼선을 초래한 면이 없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을 곁드려 봅니다. 

심리학, 철학이 존재해야 하는 중요한 이유를 진심으로 인정하고 감사해야겠네요. 더불어,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자들은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십니다. 

♡ 응재 곽계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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