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람에게는 세상 자랑, 성도에게는 사명입니다!
ㅎㅎㅎ 가나안 땅의 일곱 족속의 가증한 것들이 우리 안에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바로 왕에게 나리신 열가지 재앙은 세상 죄 속에 살고 있는 인간들에게 나리는 재앙인 것이지요. 지옥이 따로 없습니다.
세상에 사는 어느 누구도 죄와 재앙에서 피할 수 있는 예외는 없지요. 그걸 깨달으셨다니, 축하드립니다.
믿고 의지할 자는 자신 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만왕의 왕이시고 전지전능의 능력자이신 하나님에게 전적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를 조금이라도 경험하시고, 깨달으셨다면, 이제 내면에 가졌던 상처가 깨달음으로 치유 되신 겁니다.
이를 깨닫는 한, 더 이상 남과 비교하거나, 판단할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 모두가 상처 받은 죄인으로서 재앙을 받을 대상으로서 예외가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나만 상처가 있다는 속 좁은 자아의식이 죄의식으로 발전하는 겁니다. 사실 그 자아의식은 나라는 일인칭이 여전히 내면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고, 이에 집착하는 한, 결국은 지옥의 화를 면할 수 없습니다.
나를 위해 일인칭으로 살지 말고, 삼인칭으로 살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지요. 남으로부터 위로 받고자하는 마음도 결국은 일인칭인 자아의식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결과 입니다.
세상에는 나만을 위한 것은 아무 것도 없고, 나만을 위한 장소도 어느 곳에도 없습니다. 모두가 하나님 것이지요. 세상을 내 것, 니 것이라고 정의하는 한, 상처는 피할 수가 없는 겁니다. 니 것 내 것을 구별하는 한, 결국은 세상 모든 것이 나를 배반하는 대상으로 돌아서기 마련입니다.
복음을 위해 사는 것이 우리에게 유익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나라는 존재를 부인하게 하는 유익한 도구이기 때문입니다. 나의 영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 모두의 영을 바라 보게 하는 아름다운 은혜의 도구입니다.
그 곳에는 ‘내’가 없기에, 모두가 ‘내’가 되고, 또한 ‘내’가 ‘모두’로 승화하는 아름다운 곳입니다. 다른 것은 모두가 부분에 지나지 않습니다.
가끔은 맞지만, 그렇다고 모두에게 맞는 것은 아닙니다. 가끔은, 그것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자랑으로 보이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꼬집어 자랑이라고 하지 않을 것은, 다 경험해 보았기 때문이고, 또한 이에 대해서 아무 가치도 부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오해라고 하는 겁니다. 인간은 태생이 부분에서 벗어날 수가 없기에, 오해가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바울의 고백처럼, 세상에 만연하는 오해에 가치를 두고 있는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긴다고 했지요..
세상살이가 ‘나’만이 겪는 고난이라고 여겨지는 한, ‘나’라는 틀 안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모든 일반 사람들이 겪는 똑 같은 고난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우리의 상처를, 깨달음을 함께 나눔으로서, ‘나’라는 우상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도리가 마련 되는 겁니다.
누구는 세상 자랑으로 나누고자 하지만, 누구에게는 보편적인 진리의 깨달음의 가치를 나누고자 하는 겁니다.
그것이 세상 사람들과 하나님 백성들과의 차이점입니다. 이와는 역설적이지만, 예수님의 십자가가, 헬라인이나 유대인에게는 어리석고, 용서하지 못할 가증한 죄인의 부끄러운 가치로 매겨지지만, 우리 성도들에게는 천하에 비교할 수 없는 자랑으로 여기는 것이나 마찬가지 예가 됩니다.
한 소중한 생명이 오해하고 상처가 깊어지는 것은 진정으로 바라지 않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렇게 또 다른, 변명 아닌 변명을 길게 써 내려 가고 있는 겁니다.
누구에게는 세상 자랑이지만, 누구에게는 사명입니다. 이는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이 판단 하실 겁니다. 이미 자랑을 떠난 사람이기에, 세상 사람들과의 인연을 원치 않는 사람이기에 이렇게 이야기 드릴 수 있습니다. ㅎ
같은 죄인으로서 통회하는 입장이지만, 하나님이 하심을 믿기에, 그저 이에 감사함으로 아멘합니다. 포스팅하는 글들은 우리들 개인만을 위한 가르침이 아니라, 하나님이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하나님이 준비하신 선물입니다.
전적으로 기쁨으로 아멘하는, 심령이 가난하고, 말씀에 목 마른 영을 가진 사람들의 몫이 되게 해야 합니다. 어려운 상황을 통해서도, 거듭나게 하는 심령을 위해서 역사하시는 하나님께 감사 드립니다.
“이제 나는 여러분을 위하여 받는 나의 고난을 기뻐하며,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위하여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내 육체에 채웁니다(I now rejoice in my sufferings on your behalf and fill up on my part that which is lacking of the afflictions of Christ in my flesh for His Body, which is the church). <Col.1:24>
♡ 응재 곽계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