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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교회에 다녀 와서!

-“선생이시여, 오늘의 가르침은 무엇인지요?”

“아무리 당신이 열심히 노력한다해도

당신은 모든 것을 다스릴 수 없으니 당신

마음이나 편히 다스리시요.”-

(주신 말씀!)

“사랑과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 안에 있어 의의 병기로 좌우하고 영광과 욕됨으로 말미암으며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말미암으며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고린도후서 6: 7-10>

(엄목사님, 초대교회에 다녀 와서!)

2023.10.15일, 추수감사절 찬양대회

(1) 인사:

공자왈,

“”육십에 이순”이요,

육십에 귀가 열리면 마음도 열리면서

인생 여정을 전반을 이해하게 되고

“칠순에 종심소욕불유구”라,

생각하는 대로 발 가는대로 운수대통이니,

대도무문이라.”

인생에도 소설처럼 나이에 따른 기승전결의 흐름이 있다. 어느 유명철학 교수는 인생의 전승기는 65~75이라고 했는데, 신앙인의 관점으로 비근하면, 인생 육십에 자신이 걸어온 지난 날을 돌아보게 되고, 인생의 중요한 변곡점마다 내가 그토록 애쓰고 노력한 것들은 흔적도 없어졌고 다만 계획하지도 않았던 것들이 우연의 고리처럼 이어져서 지금의 나를 세웠다는 사실을 확인한 나이였다고 기억된다.

이정표마다 예수님이 나의 가는 길을 인도하셨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고 성경 말씀대로 인용해보면, “인생이란 각자가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가 가신 길을 따라가는 것이다”라는 사실이다.

인생 칠십이 되면 지난 날을 돌아보기 보다는 공자의 말처럼,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만족하고 자신만의 인생길을 걸어갈 수 있는 나이라는 사실을 확인한다.

남으로부터 잊혀진 나이라기 보다는 남을 의식하지 않고 홀로 서 있는 나무처럼 천상천하유아독존식 현재에 충실하면서 주인의 자신감으로 살아가는 나이라는 생각이 든다.

1) 김춘수(꽃)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하나님이 나의 이름을 부르시면 나는 하나님

구원의 꽃이 되어 영원한 생명이 된다.

내가 하나님을 부르면 하나님이 나에게

구원의 꽃으로 오셔서 영원한 생명이 된다.

2) 본론:

2-1) 마더 테레사

“한 번에 한 사람만 품에 품는다.”

한 번에 한 영혼만 품는다.

구원의 역사는 한 영혼을 품는 것이고 그 한 영혼이 우주를 구원하는 셈이 된다. 생명은 결코 숫자가 아니다. 단 한 생명에서 시작해서 한 생명으로 모두 끝난다.

그 한 생명은 예수다.

2-2) 사람은 겉 모습이나 행동을 보더라도 사람을 판단할 수 없는 것은 어느 곳에 어떤 소명으로 있는냐에 따라서 완연히 다른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어느 때 어느 장소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하느냐에 따라서 다른 사람으로 태어나기 때문이다.

2-3) 끊임없이 질문하고 의심해라.

그리고 순종하라.

그렇지 않으면, “순종?” “So What?”이라는 반박에 좌절하게 된다. 그렇다면 신앙이란 과연 무엇이길래 믿음과 순종을 확정하기 전에 끊임없이 질문하고 의심해야 한다는 것인가?

-질문하는 사람은 5분 간만 바보가 되지만 질문하지 않는 사람은 영윈한 바보가 된다-

– 신앙이란 전적으로 하나님과 나 사이의 관계다. ‘P to P(person to person)’ 관계다.

그런즉, 신앙인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 직접 질문하고 부정하고 의심하는 것으로 관계를 가져갈 수밖에 없다.

질문하고 의심하는 가운데 하나님과 나와의 결코 흔들리지 않는 관계성을 굳게 다질 수 있고 그를 통해서 하나님의 전지전능한 존재감에 대한 신뢰성을 획득하게 되고 이것이 믿음의 반석으로 다져지게 된다.

세상 어떤 것으로도 하나님과 나 사이의 특별한 관계성을 능가할 수 없을 것이다라는 사실을 깨달으면 어떠한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 신앙관을 가지게 된다.

하나님이 살아계심과 매 순간 순간 나와의 관계하심과 동반하심을 ‘알게 되면(깨닫게 되면)’ 자연스레 그분의 전지전능하심을 알게되고 그분에게 감사하는 가운데 백프로 순종하게 되지 않겠는가? 이것이 깨달음으로 통해 얻는 진정한 믿음이고 또한 순종이 된다.

2-4) 세상에는 깨달은 사람과 깨닫지 못한 사람 두 부류가 있다.

무엇이 깨달음인가? 진리를 깨닫는 것이다.
그 진리의 깨달음이 무엇인가?

전지전능하신, 신실하신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믿음을 확신하는, 섭리를 믿는 그 깨달음이다.

5) 깨달음의 사람들은 누군가? 그 사람을 어떻게 알아보는가? 깨달은 사람의 열매는 무엇인가?

(고린도후서 6-10)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깨달음의 길은 험난해서 깨달은 자의 모습도 복합적인 모순의 모습을 보인다. 근심하는 자이지만 항상 기뻐하는 자이기도 하다.

또 가난한 자이지만 자신의 가난과 관계없이 많은 사람을 부유하게 하는 자이기도 하다. 그리고 아무 것도 없지만 모든 것을 가진 자의 이중적인 모순의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실제로 세상적으로는 분명히 근심하는 자요, 가난하고 아무 것도 내세울 것이 없는 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깨달음으로 인해서, 복음의 능력이 그를 항상 기뻐하는 자로, 많은 사람을 부유하게 하고 또 모든 것을 가진 자로 거듭나게 한다.

근심과 가난과 아무 것도 없는 자가 깨달음의 복음으로 인해서 기쁨과 부유함과 모든 것을 가지는 경지로 넘어가게 된다.

(빌립보서 4:12)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다사다난했던 인생사를 겪으면서 깨달음은 모든 것을 넘어가게 하는 능력을 부여 받는다.
깨달음은 이렇듯 세상 경계를 허물게 한다.

​일체의 비결을 배우게 하는 깨달음은 결국 세상을 넘어가 하늘에 머물게 하는 능력을 제공한다.

3) 깨달음의 근본은 무엇인가?

​(빌립보서 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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