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란 가운데, 기쁨을!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다.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다만 이뿐 아니라 환난 중에도 즐거워 하나니 이는 환난이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로마서 5:1-4>
우리는 단지 믿음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 한다. 여기서 바울이 특히 믿음을 강조한 것은 당시 신약의 바른 가르침이 성도들에게 깊이 새겨지지 못한 상황에서, 성도들에게 특별히 이른 말씀으로서, 구약의 율법에 취한 나머지, 행위로 자위하는 이스라엘 지도층 사람들의 교만에 대한 경고의 말씀인 것을 알 수가 있다.
히브리서에서는 의미론적으로는 아니지만, ‘오직 믿음’ 이라는 바울의 이 말에 대해서 오해할 수 있는 말씀인 ‘행위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한 부분이다. 우리는 이 부분을 어떻게 접근해서 충돌이 일어나지 않는 바른 하나님의 뜻을 세울 수 있을까?
바울이 주장한 ‘믿음과 행위’의 의미는 ‘은혜의 법’과 ‘죄와 사망의 법’ 만큼이나 너무나 분명하다. 그러나 히브리서에서 언급된 믿음과 행위는 그 의미를 분별하기는 그리 호락호락 하지 만은 않다. 마치 예수께서, “내가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왔다”고 하신 말씀의 진의 여부를 결정하는 만큼이나, 복잡하고 어렵다는 느낌을 가진다.
이 의미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오해를 해서, 신약인 은혜의 시대에 와서도 이 귀절을 핑계로 해서, 율법에 안주하려는 어리석은 시도가 여전히 계속 되고 있어서, 현대교회에서도 심각한 부작용이 일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히브리서에서 말씀하고 있는 행위라는 것은, 구약의 허울 좋은 율법주의에서 기반 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진정한 ‘긍휼의 행위’, ‘사랑의 행위’를 의미하고 있다.
위에서 잠시 언급한 율법의 완성이란, 율법 자체의 완성이라고도 할 수 있는, 율법을 내리신 하나님의 바른 의도가, ‘사랑의 완성’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하듯이, 히브리서에서 의미하는 행위도 이와 마찬가지로, 믿음을 기반으로한 하나님의 자연스러운 사랑의 행위를 의미한다.
결국 신약의 새 계명이라고 하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는 행위’를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다.
본문에서 우리가 의롭다하심을 받은 고로,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하게 되었다는 사실도 명심해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의롭다고 칭의하신 근본 목적은, 그리스도 예수를 통한 우리와의 화평을 선포하시기 원함이라는 사실도 깨달을 수 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음을 지킬 수 있는 은혜 가운데로 들어 가서, 우리의 마지막 소망인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할 수 있는 동력이 된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
이 영광을 향한 믿음의 소망은 환란에서부터 시작 되며, 이 환란이 인내의 열매를 맺게 하고, 인내는 또한 믿음의 소망을 굳게 잡게 하는 연단을 마련하게 한다. 이것이 하나님 복음의 말씀이다.
“너희들이 환란을 당하느냐?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나님의 영광이 함께 함이라.”
♡ 안응 곽계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