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에서, 자유하라!
“하늘을 향한 감사의 생각은 그 자체가 기도이다.”
– C. H. 스펄젼 – -Yun Ester 님 인용 –
아멘!
우리는 많은 경우, 기도에 대한 애매성으로 인해 혼란을 겪는다. 성도들은 기도를 마치 신앙 생활의 만능 열쇠나 혹은 대화의 편리한 수단 정도로만 여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만큼 기도에 대한 정의의 폭이 한 없이 넓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다 보니, 오히려 기도에 대한 특별한 흥미가 사라지는 경향이 없지도 않다.
과연 기도는 어떤 정해진 폼이 있는 걸까?
누구는 40 일 금식 기도를 언급하기도 하고, 누구는 기도를 하나님의 존재로 여기면서, 호흡하는 숨 정도로 하나님과 밀착할 정도로 긴밀하게 여기기를 바라기도 한다. 또한 성경에서는 어두운 골방에서 하는 기도를 추천하기도 하고, 외식하는 자들처럼 중구난방으로 하지 않도록 권하기도 했고, 또한 우리가 필요한 것을 다 알고 계시니, 더 이상 세상의 필요한 것을 기도하지 말라는 충고도 있다.
얼마나 햇 갈리면, 제자 된 사도들이 예수님께 기도에 대해 가르쳐 달라고 했을까?
지금 이 시대에 사는 우리들도, 기도에 대해 요청하는 제자들의 급박한 심정을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다. 어쨌든, 기도는 하나님과의 교통의 수단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지만, 여전히 기도에 대한 마지막 해결책은 없는 것 같다.
이런 막연한 입장에서, 위에 인용한 스펄전의 어록은 매우 뜻하는 바가 크다 아니할 수 없다. 기도의 본질은 믿음의 본질에서 찾아야 하기 때문이고, 또한 하늘을 믿는 그 믿음이 우리로 감사하게 한다. 하늘의 은혜에 대한 믿음이 기도요, 감사로 표현 되게 마련 이다. 이는, 또한 세상에 대한 분별력을 지니고 있다는 확실한 증거가 되기도 한다.
기도를 별 것으로 여기고자 하는 숨은 의도는 대부분 구약의 바리새적인 외식과 교만의 죄에서 유래 된다. 기도는 진리의 특성을 그대로 담고 있기에, 기도는 숨 쉬듯이 가볍고 쉬워야 하며, 또한 외형이 아니라, 내면의 깊은 자유함을 누려야 할 것이다.
“기도는 자유하게 하는 진리의 영과 교통하는 영의 아름다운 교통 수단이다.”
♡ 안응 곽계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