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수께끼 같은 신의 창조물, 인간?
“진리에 도달하려면 일생에 한 번은 자신이 받은
모든 의견을 없애고 전체 지식 체계를 새로
구축해야 한다. ” -르네 데카르트-
(수수께끼 같은 신의 창조물, 인간?)
차이코프스키의 로망스는 결국 여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남자를 향한 구애인 셈이였네요? 참으로 아이러니칼하게 여겨지기도 하지만 사람이 성숙해지면 구체적인 육체로 대표되는 성의 구별이 아니라 사람을 대표하는 휴머니티 정서에 초점을 맞춘 결과가 아닌가 생각도 됩니다.
나이가 들수록 호르몬의 변질로 인한 부작용(?)으로 인함인지는 모르겠지만 여성은 여성끼리, 남성은 남성끼리 모이는 경향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제는 성의 구별이 성가신 나이가 되었거나 남녀 서로 간에 가지는 가치나 바람의 의미가 사라지는 황혼의 세대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현상이, 늙어서 좋을 수도, 아니면 황량해지는 수도 있는 인생의 갈림 길에 서 있는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네 샘😎, 공감합니다
니이가 든다는 것이 편견에서 벗어나 모든 걸 수용하고 이해하게 하네요. 많은 경험도 도움이 되는 듯 합니다. 차이코프스키 시절엔 동성애가 큰 범죄 범주에 있어서 사형이나 시베리아 유배를 보내기도 했죠.
백작의 젊은 조카와 연인관계를 맺은 차이코프 스키가 점점 조여오는 압박감을 견디다 못히고 스스로 목슴을 끊은것은 어쩔 수 없는 숙명입니다. 마지막 교향곡 비창의 4장을 들어보면 샘 끊어질 듯한 슬픔의 단말마가 극적으로 표현되어 있어요.
너무 슬퍼요. 부질없는 죄명이죠? 동성애는 이제 인정하고 받아 들여 지고있는 추세입니다. 오늘날 그가 살았더라면 그의 곡이 그리 비통하거나 슬프지 않겠죠? 샘 💖, 가을 깊어갑니다. 차이코프스키의 애절한 비창을 들어 보시어요. 멋진 가을입니다 💕”
-오윤미님-
그랬군요?
차이코프스키의 비극적인 삶의 종말은 예수의 십자가 삶과 같이 참으로 현실의 각박함과 분함과 억울함을
연상하게 합니다. 그래서 그렇게 심오한 음악예술의 정수를 마구 쏟내었구나 하는 이해를 가집니다.
베토벤은 육적 고통 속에서 극치의 아름다운 멜로디를 빚어 내었다면 차이코프스키야말로 동성애자로의 죄의식으로 정신적 장애로 인한 깊은 고뇌로 인해서 음악 예술의 극치를 표현해 내게되었다는 생각도 듭니다.
이렇듯 영원히 기억되게 할 예술품을 창조하기 위해서는 예외 없이 피를 토하는 고통과 고뇌가 수반되어야 한다는 인생의 모순을 마주하게 됩니다.
데카르트가주장하는 생각하는 인생이야말로 실로 이해 할 수 없는 수수께끼 같은 신의 창조물인 것만은 분명한 사실인 것 같습니다.
♡도천 곽계달♡
ㅡㅡㅡㅡㅡ
“차이코스키의 로망스는 올가을 나의 주제곡이다.
슬픔과 낭만의 천재작가, 그가 쓴 작품 대부분은 그의 기질과 닮은 깊고 진한 우울함과 비통함이있다.
하지만 얼마나 감미롭고 사랑스러운가?
남은 가을을 차이코프스키와 함께 걸어 가야겠다
그의 비창 속에 낙옆 을 묻으며 나누는 데이트. 흠 😍
그는 남자를 여자 보다 더 좋아 했지만 그게 뭐 ?
나이아 가라 숲속은 황홀하겠다
이른 아침 가벼운 식사다 따스한 티에 담은 그리움들… 오케잇 난 차이코프스키 로망스 에 흠뻑 젖는다.” -오윤미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