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부인한다는 것!
세상 인연을 끊는다는 것은,
진리를 짝하기 위한 첫 발걸음이다.
그 인연이란, 비단 사람들과의 관계를 끊을 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이해 관계를 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이해 관계에 포함 되는 것은 세상 복도 포함 되면서, 세상 살아 가는데 필요한 세상 물질도 포함하는 것이다.
진리의 길은 먼저 자기를 부인하고자 하는 것부터 시작하는 데, 무슨 모양의 인연이라도 당연히 부인 되어야 하는 것은 인연의 주체인 자기가 없는 데, 어찌 인연이 발동 되겠느냐? 하는 것이다.
자신 자리에 진리가 채워져 있기에, 이제 더 이상 자신은 없고, 진리만 충만하게 빛을 발해야 하기에, 기름 떼처럼 더득더득 붙은 이 세상 모든 인연은 당연히 그 모습이 사라져야 할 것임에, 진리를 짝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인연이란 존재 자체도 고려 되지 말아야할 것이리라.
자신을 버린다는 의미는 진리와 하나 되기 여함이니, 모든 인연을 진리 안에 내려 놓는 것이라는 생각도 해 본다.
♡ 안응 곽계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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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관화상이란 스님이 오홉암이란 산중의 작은 암자에서 지낼때다.
오홉암은 한 사람이 겨우 하루를 살아갈 수 있을 정도의 식량 다섯홉씩을 매일 본사에서 공급해 준데서 나온 이름이다. 그런데 양관스님이 오홉암에서 지낼때는 이 다섯홉의 식량마져 여의치가 않아 손수 산아래 마을로 내려가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탁발을 해야만 했다.
그렇게 근근히 끼니를 이어가며 지내던 이 가난한 암자에 어느날 도둑이 들었다.
그날도 양관스님은 마땅히 덮고 잘 이불이 없어 낮동안 앉아 좌선을 하던 방석을 이불 대신 살짝 몸에 덮고 잠이 들었다. 도둑은 방안 이곳 저곳을 살펴보았지만 어느 것 하나 가져갈 물건이 전혀 눈에 띄지 않자, 스님이 덮고 자던 방석을 훔치려고 마음을 먹었다. 도둑의 조심스런 몸놀림에 설핏 잠이 깬 스님은 누군가 방안에 들어와 있다는 것을 곧 눈치챘지만 가만히 자는 체 하고 있었다. 그러다 도둑이 스님의 방석을 집어들려고 손을 댄 순간 잠결에 살짝 몸을 뒤척이는 척하면서 방석을 가져가기 쉽게 모로 돌아누웠다. 이러는 사이에도둑은 냉큼 방석을 집어들고 잽싸게 달아나버렸다.
그런 일이 있은후 시간이 흘러 양관스님은 방석을 도둑 맞은 일조차 까맣게 잊어버렸다.
그런데 몇해가 지난 어느날, 어떤 사나이가 이불 한채를 어깨에 둘러메고 오홉암을 찾아와 양관스님 앞에 내려 놓더니, 무릎을 털석 꿇었다. 깜짝 놀란 스님이 사나이에게 물었다.
“아니, 누구시기에 제 앞에 무릎을 꿇으시는지요”
그러자, 사나이가 눈물을 흘리며 대답했다.
“저는 몇 해 전에 스님께서 이불 대신 덮고 자는 방석을 훔쳐간 사람입니다.
그 때 저는 스님께서 일부러 자는 체 하시면서 방석을 쉽게 가져가도록 하신 일은 두고 두고 양심에 가책을 느끼며 살아왔습니다.”
사나이는 양관스님의 그 말없는 너그러움과 청빈한 생활에 깊은 감동을 받고 몇해 동안 자책해오다가 결국 아내와 의논하여 스님께 용서를 받기 위해 이불 한 채를 만들어 온 것이다.
이불이 없어 방석을 이불 삼아서 살아가는 청빈한 스님께 그 방석조차도 도둑이 원한다는 사실을 알고 일부러 모르는체 하며 내어주는 그 너그러움과 자비심, 참으로 본받을 만한 정신이라 여겨집니다. 우리 보통 사람 같으면 미리 인기척을 하여 도둑이 발을 못부치게 하든지, 아니면 알고도 모르는체 하다가 탁 덜미를 잡아 다시는 도둑질을 못하게 혼을 내거나 경찰서에 신고를 했을텐데 스님은 알고도 모른체 눈을 감아주어 도둑으로 하여금 깊은 감동을 받게 하고 결국에는 양심의 가책을 느껴 용서를 구하게 하니….
또한, 스님이 은혜를 베풀어놓고도 그 일을 까맣게 잊어버렸다는 것은 참으로 응하여도 주함이 없는 수행의 경지에 들어선 취사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우리 소중한 님들!
이제 제법 날씨가 싸늘해졌습니다.
옷깃을 여미게 하는 깊어가는 가을에 더욱 몸과 마음관리 잘 하시어 항상 건강하시고 양관스님께서 도둑에게 베풀었던 그 너그러움과 자비심을 나날이 본받는 생활 되시길 간절히 기원원해 봅니다.
– 곽봉호님 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