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에 것을 찾아라!
“ㅋ 명색이 장로 올시다. ㅎ
ㅋ 예수 교회 장로올시다. 지정 된 신앙의 주소는 없습니다.
고백을 드린다면, 필자에게는 늘 방해 된 것이 기성 교회라는 현실이었습니다. 진리에서 떨어진 현대교회의 병폐는 이루 말할 수가 없지요. 특히 대한민국에서는 예수가 없답니다. 예수 못 밖는 교회들이지요. ㅎ 바리새인들처럼 교만한 기성 교회이지요.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가르쳤는데, 사랑은 커녕 세상 자랑과 존재감만 외골수로 자리하고 있지요. 교만의 화신들이 교회를 장악하고 있지요. 사기와 음모와 시기 질투가 가득 채워져 있지요. 맘몬 신인 사탄의 전략을 엿볼 수 있는 곳이 현대 교회이기도 하지요.
지금은 교회를 떠나서, 잠잠한 상태이지요. 이태원에 있는 외국인 교회 영어 집회에 나가면서 영어 설교 가능하도록 준비하고 있습니다. 교수직에서 올해 은퇴하면서 그동안 해혼대로, 중국 선교를 위한 영어성경 준비하고 있지요.
뮈, 선교라고해서 거창한 계획이나 누구나 가지는 특별한 비전은 없습니다. 삶이 선교랍니다. 중국에서 마지막 일생을 살고자 하지요. 선교는 일상에서 나타나겠지요. 꿈이 있다면, 중국을 사랑한 기독인 정도로 남고 싶은 거지요.
필자는 모 대학 공대 전자과를 나와서 모교의 교수를 역임했지요. 마지막 지인의 추천으로 선문대에서 국내외 산학협력 관련 일하다 올해 정식으로 정년이 끝나 은퇴하고, 그동안 성령이 인도하신 대로 짬짬이 준비했던 영성(?)에 주력하고 있지요.”
“장로님에게선 여전히 장로님이 주님보다 더 크게 자리를 잡고 계십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지요?”
“내 “의” 가 달려 나가지 않고 주님이 나가시도록 자리를 내어 드리고 기다리시면 주께서 앞서 가십니다.
가장 힘든 일입니다. “날마다 나를 죽이는 일”, 아가서에서 살펴 본 것이 이것입니다.”
“당신께 부러운 것이 그런 면일겁니다. 나의 경우, 여전히 체면이나 부끄러움이 나의 의로 나타나는 가 봅니다. 하나님 만이 아시겠지만요.”
“내 안의 영을 살리는 훈련이 필요 한 일인데, 지식으로 지키는 것으로 율법으로 훈련을 받았기 때문에 그 틀을 벗어 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바리새인을 탓하지만 바리새인처럼 신앙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이 보이고 그것에 대한 거부 반응이 더 큰 것입니다.”
“도둑의 눈에는 도둑만 보이는 현상이겠지요? 판단하는 자를 또한 판단하는 우를 범하는 거지요. 우리의 신앙의 여정은 끝이 없는 거이지요. 이제는 하나님 일이라는 개념도 없어요. 그냥 이 자리에서 진리의 빛을 발하는 것이라 여기고,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은퇴했으니, 이런 생각으로 잠잠히 지내고 있지요.”
“우리가 신앙을 그렇게 배웠기 때문입니다.”
“오랜 동안의 기다림이지만, 여전히 변한 것은 없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이 시가 무엇을 말하는지 한번 살펴 보시지요
<맷 비둘기>
나를 사랑하는 자라 부르는 님이여
지면에 비도 그치고 꽃이 피었다며
일어나 함께 가자시는 나의 님이여
바위 틈 낭떠러지에 숨은 비둘기의
노래를 듣고 싶다시는 나의 님이여
작은 맷 비둘기의 노래가 들리나요
날개가 없어 날지 못해도 좋습니다
다리가 없어 걷지 못해도 좋습니다
당신만 바라는 눈동자에 머무시고
당신 넓은 품속으로 나를 숨기시며
높은 하늘을 날지 못해도 좋사오니
그대로 인하여 하늘을 살게 하소서”
“같은 마음으로 여겨지네요.
ㅎㅎㅎ 이상도 이하도 여한도 없소이다.
필자의 지금의 심정입니다. 그리고 나의 시로소이다.”
“여기보다 더 깊은 곳으로 가시면 주님이 앞에서 선교 하십니다. 아가서의 숨은 깊은 뜻들이 풀어 지면 쉽게 이해가 되겠지요. ”
“멋진 답입니다. 하나님이 하시지요. 그는 신랑, 나는 그분의 손길을 기다리는 수줍은 신부로소이다. ”
“이 땅은 신부를 준비하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소망은 내가 다른 영혼을 살리느라 내 영혼을 돌보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내 영혼을 살려 마지막 남은 장막절( 수장절)에 열매를 안고 들어 가기를 원하심이 가장 큰 선교이고 사명입니다. 내 영이 신부인지? 초대 받은자인지? 확인이 안되서는 안되겠지요.”
“하나님이 하심을 어떻게 내가 확인할 건가요?”
“주님으로 채워지면 앞서 행하시는 주님이 느껴지고, 보여지고, 세상을 향한 나는 침묵을 하는 단계가 옵니다.”
“아멘. 진정한 침묵은 하나님의 힘이 느껴지지요. 믿음의 침묵, 하나님과 함께 동거하는 에녹의 침묵 입니다. 세상을 향한 나의 침묵? 멋지네요. 좋아요. 나는 지금 세상을 향해 침묵하지만, 반항도 하는가 봅니다. ㅎ”
“네… 여전히 광야에서 버리셔야 할 선악과의 결과 (열매)를 안고 계시는 듯 합니다. 광야는 그것을 뿌리체 뽑아 버리고, 나를 버리는 곳입니다. 세상의 부조리를 탓 할 마음이 있다는 것이 그 열매를 증거 하고 있습니다. 아가서 2장에서 말하는 포도원을 허는 “작은여우”를 찾아 내어야 합니다. 나의 삶을 갉아 먹는 것입니다. ”
“그래요. 고난과 역경에 처했던 다윗의 열쇠 이야기가 생각나네요. 여전히 쇠를 갈아야 하는 광야의 수습기간 인가 봅니다. 적어도 세상을 향한 반역도 의미 없음을 깨달아야 하겠지요.”
“욥의 마지막 장면은 욥이 찾고 부르던 하나님 앞에 서서 비로소 자신이 죄인임을 알았습니다. 그 후에 그가 친구들을 위하여 제사를 드리는 제사장 예배자로 주님 앞에섭니다. 주님을 만나면 적신 벌거벗은 자신만 보입니다.”
“아멘. 주님 앞에 벌거벗고 서 있는 당신의 모습이 보입니다. 그게 내 마음을 끌어 가는 원인이기도 합니다. 나의 가고자 하는 그 곳이기 때문입니다.”
“제 살을 깍는 듯, 피를 토하듯, 주님을 향하여 몸부림한 몸짓이, 주님을 찾아 가며 나를 깍는 작업이었습니다. 결국은 점점 말이 줄어 들어 점점 몇자 글에 마음을 담고 있습니다.”
“마지막에는 어떤 피를 토하는 말만 남을까요? 억! ”
“글쎄요… 주님만 아실 것입니다.”
“듣고 싶네요. 24 장로들이 보좌 앞에 둘러 서서, 찬양하는 말이 되겠지요?”
“전 그냥 어린 아이 같이 주님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남은 일도 주님이 하실 것입니다.”
“저와 차이가 바로 그점입니다. 저는 그분을 가끔은 무심으로 대하는 것 같습니다. 방관자라고나 할까요? 나는 이렇게 잘 하고 있으니, 어디 어떻게 하시나 보자, 하는 마음이 방관자의 마음이지요.”
“ㅎㅎㅎ”
“웃으시니, 좋네요. 전에 언급하셨던 아가서 2장의 포두원을 허는 작은 여우의 여유가 엿보입니다.”
“”작은 여우”의 뜻을 깊이 아시고 잡으셔야 합니다.”
“버려야할 선악과의 열매입니다. 여기서 포도원은 바로 다달아야 할 하나님의 면전이지요. 빙고! ㅋ 실례를 했네요. 처음에는 작은 여우와 포도원을 거꾸로 해석했네요. 소개했던 성경 말씀이 단편이어서.”
“그곳에 모든 비밀이 담겨 있다면요?”
“많이 인용되는 다른 성경 구절과 별반 다름이 없는 듯 하외다. ㅎ”
“아닙니다. 더 들어 가셔야 합니다.”
“포도원이 지성소이지요.”
“그 포도원에서 작은 여우를 잡자고 하는데 “우리” 란 복수를 사용 하였습니다.”
“하나님과 나? 합동 작전?”
“단편적으로 보면 우리가 주님과 함께 한다하여도 내안의 작은 여우를 잡지 않으면 열매를 맺기 직전에 꽃을 따버리며 밭을 뒤집어 놓는다는것입니다. 그래서 사람과 관계가 우리가 되어도 각 사람의 가슴에 자신의 “습”에 베어 있고 숨어 있는 작은 여우를 잡지 않으면 그 관계도 망가지는 것입니다. 사람이 주를 믿는 다 할지라도, 포도원 주인의 정원, 에덴에 살지도 못하고, 열매도 맺지 못하는 삶을 사는 이유입니다”
“멋집니다. 나의 자화상이지요. 세우고 또 허물기를 반복하는 해변 모래성을 쌓는 어린 개구장이 올습네다. 늘 허무는 변명이 있어요. 인간으로 돌아 가자는 강렬한 소박함의 변명이지요. 자, 이제 필자는 이 밤에 꿈속에서 작은 여우 사냥을 나가렵니다. 챠오!”
♡ 안응 곽계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