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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위일체 되신 성령이 답이다!

“불교의 경전은 깨달음을 위해 존재하고, 기독교의 성경은 순종을 위해 존재한다”고 한다. 그런 이유로 뜻이 난해한 불교 경전에 비해 기독교 성경은 누구나 보고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믿음으로 인한 순종이 깨달음으로 이르게 한다.”   – Shi-Chang Wooh 목사님 –

깨달음과 순종? 

어쩌면 서로가 불가분의 관계가 아닐까? 

깨달음이 없는 순종은 맹목적인 신앙으로 빠질 것이고, 결과적으로는 방향 잃은 배가 산으로 오르듯, 지속적인 신앙생활을 보장 받을 수 없게 될 것이며, 순종 없는 깨달음은 열매 없는, 한낱 이론에 지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위에서 더 중요한 사실은, 불교의 깨달음의 주체는 자신의 끊임 없는 정진에 의해서 자신 스스로 다다르는 경지라고 여기지만, 기독교에서는 깨달음이나 순종의 주체가 자신이 아니라, 이와 반대로, 먼저 자신을 회개하고 부인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진리의 영인 성령이 깨달음과 동시에 순종하도록 이끄는 주체라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범신론의 내용대로, 누구나 깨달음에 이르면 자신이 신의 경지인 부처가 된다고 하지만, 기독교에서는 자신을 부인하는 깨달음을 가질 때에, 순종의 마음을 가지게 되고, 십자가 사랑으로 자신을 철저히 내려 놓고 부인하게 될 때에, 성령이 우리 안에 들어와서, 우리가 아닌, 성령이 우리를 대신해서 주장하고 나타나게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기독교인 경우, 순종이 먼저인가? 아니면, 깨달음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가 제기 될 수 있겠지만, 이는 정히 정해진 바가 없이, 각자의 처해진 상황이나, 성품에 따른 취향이라고 하기 보다는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른 결과라고 하는 것이 타당한 답이라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전지전능한 하나님에 모든 인간의 사항을 온전히 의지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를 하나님의 섭리라고 한다. 이는 세상만사 생사화복의 모든 것을 시작과 끝까지 섬세하게, 일획 일자의 한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고, 우리들을 이끌어 가신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순종하게 하심도, 깨달음에 이르게 하심도, 모두가 창세 전에 계획하고, 선택한 대로 그의 백성들을 이끌어 가신다는 의미를 가지게 된다. 

기독교는 불교와 동일하게 마지막에는 신과 합일이 되는 것이지만, 불교에서는 천상천하 유아독존으로 스스로 스스로 신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에서는 피조물인 인간과 창조주인 여호와 하나님으로 구별 됨으로 인해서, 피조물 자신의 바람과 애씀과 욕망이 사라진 그 빈 자리에, 창조주 신의 능력이 대신해서 충만히 채움으로, 신이 초청한 영광의 자리에 참여하게 됨으로 해서, 하나님안에 내가, 내 안에 하나님이 자리하면서 신과 하나가 되는 합일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기독교는 불교와 달리, 진리에 대한 목마름과 깨달음 이외에 신을 향한 ‘믿음’이나, ‘순종’, 그리고 ‘감사’라는 의미가 지배적인 의미를 띄고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자신이 스스로 이르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과 하나님의 긍휼한 은혜와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삼위가 하나 되는 삼위일체의 역할대로, 우리 인간을 영혼 구원에 이르도록 완성하신다.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아멘!

♡ 안응 곽계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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