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eralStyle

하늘과 땅의 축복의 기준?

신앙과 현실 세계와의 갈등 구조를 잘 설명한 내용이다. 세상과 하늘 나라가 한 둥지에 자리를 틀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라는 매체를 통해서 함께 해야하는 기구하고 부조리한 상황을 어떻게 지혜롭게 극복해 가야하는 문제가 성경 전체를 통해서 잘 가르쳐 주고 있지만, 인간의 껍질을 깨지 못하고 살아 가는 우리들에게는 여전히 어려운 난제로 남아 있다고 하겠다. 

인간은 하늘과 땅의 중간 존재로, 영원히 선택의 운명의 기로에 서서 서성이며 살아가는 불쌍한 존재임에는 부인할 수 없는 진실이 아닌가? 그리고 예수 이외에는, 어느 누구도 이에 대한 명쾌한 답을 내릴 수 없는 것, 또한 자명한 사실이기도 하다. 

그 근본 이유는 하늘 나라 복음을 이해하기 위한 수단을 세상 가치로 따지려하는 무지함 때문이다. 세상 복의 가치로 하늘의 복의 가치를 따지려 잣대를 드리 대는 한, 하늘 복음의 가치는 어느 사이 사라져 버리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고 하겠다. 

그런 의미에서 세상 복과 신앙의 복음의 의미를 연관 짓는 자체가 넌센스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세상의 복은 세상 사람들에게 맡기고, 하늘의 복은 세상 복을 초월한 사람들에게 합당하게 설계 되어 있기 때문이다.

성경에서도 시저의 형상이 새겨진 세상 동전은 세상에게 주라고 말씀하였지요. 세상 복은 세상 돈 버는 법칙에 열심히 따르는 자에게 임하는 정당한 대가에 지나지 않습니다. 세상 돈에 대해서 바른 것, 그른 것을 따지는 것은 세상 규범에 입각해서 따져야 하는 것이지, 하늘 나라 규범을 가지고 따지려 드는 것은 그야말로 넌센스라는 겁니다. 

예수께서 유대 율법을 잘 지콌다는 유대 젊은 청년에게, “전 재산을 팔아서 가난한 이웃에게 나누어 주고 나를 따르라”는 가르침에서 우리는 하늘 나라로 들어 가기 위해서는 세상 가치를 모두 버리고, 하늘 가치만을 따르라는 가르침의 좋은 본보기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 더 이상, 하늘에다 대고, 세상 복을 위해 기도하거나, 요구하는 무지한 생각이나 행위는 말끔히 제거하시기 바랍니다. 하늘 나라로 입성하는 가장 기본 자격이 세상 복을 버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공유한 내용이 한 편으로는 소중한 세상 교훈이 될 수는 있다고는 하지만, 결코 바른 하늘의 복음과는 거리가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도리가 없습니다. 

이를 깨닫는 자는 그 깨달음 자체만으로 하늘 나라의 큰 축복을 받은 셈이 됩니다. 당신은 하늘의 선택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 안응 곽계달 ♡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기도해도 아프고 가난한 건 왜일까?》

몇년 째 교회에 나가 기도했는데 병이 낫지 않는 건 믿음이 부족해서일까? 가난한 사람은 하나님이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가난한 걸까? 예수를 믿으면 돈도 많이 벌고 건강해지는 ‘상’을 받는 것일까? 

총신대 대학원장을 지낸 복음주의 신학자 김세윤(64) 풀러신학대학원 교수는 “죄와 고난, 신앙과 복(福)을 무조건 인과관계로, 일대일로 관련짓는 것은 신학적·신앙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태도”라고 지적한다. 

그는 한 발 더 나아가 최근 미국 복음주의 신학자들과 공저로 펴낸 책 ‘탐욕의 복음을 버려라’(새물결플러스)를 통해 예수를 믿으면 건강 얻고 출세하고 부자된다는 신학을 ‘번영신학’으로 규정하고 “맘몬(재물)에 대한 우상숭배에 다름 아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강연차 한국에 들른 김 교수를 인터뷰했다. 

―건강과 부를 얻고 싶어하는 마음이 무엇이 문제인가. 

“그 두 가지가 현대인들이 추구하는 기본적 가치인 것 맞다. 하지만 의로운 길을 통해 얻어야 한다. 탐욕으로 과도한 부(富)를 추구하려면 결국 남의 것을 빼앗게 된다. 예수는 ‘누구도 하나님과 재물을 동일하게 섬길 수 없다’(마태 6:24)고 했다. 월스트리트의 맘몬 우상숭배가 전세계를 불황으로 몰아넣고 수억명의 삶을 곤경에 빠뜨리는 것을 보라.”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하나님 나라를 시간적으로 미래로 연기하거나, 공간적으로 하늘 위로 밀어올려선 안된다. 지금 여기에 살면서 하나님 나라의 통치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참된 그리스도인의 자세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에 대한 요구는 단순하다. ‘혼신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이다. 누가복음 18~19장에서 부자 청년은 ‘평생 모든 계명을 다 지켜왔다’며 예수에게 칭찬받길 원하지만 예수는 ‘네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고 나를 따르라’고 명령한다.”

―하나님 나라의 통치 속으로 들어간다는 건 무슨 뜻인가.

“하나님 나라는 가치 판단과 윤리적 선택의 순간마다 내게 다가오는 것이다. 공해방지시설을 눈가림으로 하고, 철근 빼돌려 부실공사하고, 저질 식재료를 써서 음식 팔면 돈은 많이 번다. 하지만 그 때문에 지구와 내 이웃이 병든다. 사회의 다수가 물신주의적 삶의 방식을 취할 때 그런 방식을 포기하면 손해보고 고난당한다. 성경에서도 의인은 더 큰 고난을 받으며, 그 고난의 절정이 예수의 고난이다. 예수가 제자들에게 ‘네 십자가를 지고 너를 부인하고 나를 따르라’고 한 것도 그런 의미다.”

―보통 사람, 모든 사람이 가진 걸 다 내놓을 수는 없지 않나.

“중요한 것은 전부냐 반이냐가 아니라 ‘근본 정신’이다. 돈을 더 쌓아놓으려고 이웃을 착취할 것이냐, 아니면 정당하게 벌어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위해서 쓰느냐의 문제다. 가난한 사람을 거둬 먹이고 함께 살았던 초대교회의 정신에 주목해야 한다.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마태 3:13) 해야 한다. ‘하나님 이름이 너희로 인해 모독을 받는다’(로마 2:24)는 말을 들어서야 되겠는가.”

―그래도 보통 사람들에겐 여전히 어렵다.

“맞다. 어렵다. 그런 어려운 걸 잘하도록 서로 북돋우라고 교회가 있는 것이다.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이라는 핵심을 저버리고, 돈 많이 벌어 헌금 많이 하라고 하는 건 올바른 신앙의 방식이 아니다. 그러면 교회가 그리스도의 향기와 매력을 잃게 되고,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될 수도 없다.”

―한국교회가 자원봉사나 구제사역을 참 많이 하는데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한다고도 한다. 

“고개를 바짝 들고 ‘내가 의롭다’ 하는 바리새인같은 태도를 가져선 안된다. 하나님이 다 알아주실 거라 믿고 일해야 한다. 그러면 언젠가는 세상이 ‘뉴스에 나오는 일부 교회의 추태가 다가 아니었구나’, ‘한국교회가 정말 하나님 나라와 이웃을 위해 헌신해왔구나’ 하고 알아줄 것이다. 알아주지 않으면 또 어떤가. 예수가 자기를 내세우려고 말로 싸우던가?”

―‘그러는 당신은?’, ‘너나 잘하세요’ 같은 시니컬한 태도로 ‘쿨’ 한척 하는 사람도, 그런 태도에 상처받는 사람도 많다.

“그런 건 그리스도인의 태도가 아니다. 나도 이런 말 하면서 스스로를 향해 설교하는 것이다. 가치 판단의 순간 10번 중 한 번이라도, 나의 욕심보다는 예수의 권면에 따라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을 기준으로 해보겠다고 결심하는 것이 중요하다.”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