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신앙이란?
좋은 내용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역할은 없고 우리네 역할만 있는 것 같아서 결국은 이 또한 실패하리라는 확신을 가집니다.
신앙은 목적도 수단도 아닙니다. 있는 그대로, 존재 그대로여야합니다. 인위적인 게 없어져야 하나님 다움이 발현될 것입니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세상은 세상 패션대로 나아갑니다. 선진국으로 갈수록 종교의 무의미함이 드러남으로 배척 받는 이유입니다. 참 신앙은 결코 세상 유행과 함께 할 수 없는 겁니다.
신앙은 오직 선택 받은 자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세상 무리들과 영합하기 위해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신앙은 숫자가 아닙니다. 오직 예수 한 사람으로 만족하고자 하는 것이 신앙의 유일한 이유이자, 구원의 목적입니다.
그런 이유에서 종교 대 부흥을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는 현대교회는 엔트로피만 증가하는데 일조를 더 할 뿐입니다. 방향이 잘못된 교회는 스스로 도태되어야 하고 이것이 요즘 나타나는 교회의 병폐입니다.
하나님이 부르시고 입히고 또 재워주십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일대일의 관계, person to person 관계 만이 참 신앙, 지속적인 신앙으로 가는 유일한 길입니다. 그 외에 어떤 수단과 방법도 모두 실패하는 이유입니다. 아니 당연히 실패해야 합니다.
“Kae Dal Kwack님, 결과론적으로는 이렇게 말할 수 있지만 과정상에는 철저히 사람의 책임과 노력이 따라야 한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교파마다 전제가 다르니 그 전제 안에서라도 성령님의 인도를 따라 최선의 길을 찾아가시길 바랍니다.”
안환균님, 이런 생각이 떠오르네요?
예수께서도 철저히 사람의 책임과 노력이 따라야 된다는 같은 고민을 하셨을까요? 어떻게 보면 제자를 양성하는 입장에서는가장 무책임하고 무능력의 소유자라는 생각이 드실 분이 바로 예수님 자신이었습니다. 어렵고 힘든 일은 모다 성령께 일임했지요? 인간의 최선은 성령의 입장에서는 최선이 아니라는 생각도 듭니다.
“Kae Dal Kwack님, 예, 그래서 저도 ‘성령님의 인도를 따라’ 사람의 책임과 노력이 따라야 한다고…^^ 사람에게 사랑할 수 있는 자유를 주시지 않았다면 애초에 선악과도 없었을 테지요. 운명론적으로 흘러갈 수 있는 부분을 막기 위해 신학적인 뒷문을 열어두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신학적 뒷문이라는 용어가 흥미롭습니다. 하나님 입장에서는 신학적 도움을 필요치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오히려 마지막 문까지 닫게 되는 폐를 끼치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도 듭니다. 다만, 질문을 던져봅니다.
“Kae Dal Kwack님, 우리 사람의 입장에서 신학적인 뒷문이지요.^^ 하나님도 완전하시고 성경도 자체적으로 완전하지만, 그것을 해석해서 삶과 신앙에 적용해야 하는 사람은 불완전하니까 해석이 다양해질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신 것이 ‘신학적 뒷문’인데, 이 또한 넓게 보면 하나님의 은혜의 섭리 안에 있다고 믿습니다.”
안환균님, 인간의 불완전함으로 인한 신학 해석의 다양성과 과정에 대한 섭리의 의미에는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그렇다면 교회를 포함한 우리가 고민할 세상
문제는 단 하나도 없다는 결론을 내려봅니다.
신학뿐만 아니라 신학이 그토록 해결하고자 하는 모든 갈등과 고민 조차도 불완전한 인간의 소산이고 또 완전으로의 과정으로, 그로 인한 다양한 의견과 현상을 통해서 완전한 하나님 섭리 안에서 모든 것이 포용될 것으로 사료되기 때문입니다.
♡도천 곽계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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