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람을 보랴, 하나님을 보랴?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사람은 이름을, 그리고 가죽과 이름 위에 남는 것은 말씀과 진리가 아닌가?” 여기에 말씀과 진리의 비밀이 있다. 우리 각 자가 고민해야할 문제이기 때문에 아래 5가지 경우를 실어 보았다. 아래 인용한 글을 통해서 무엇이 하나님을 보는 것이고, 무엇이 사람을 보는 것인지를 각 자가 가진 영성의 눈을 가지고 분별하여 바라보기 바란다. 그 분별의 기준은 오직 말씀과 진리 안에서만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그 말씀과 진리는 영원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도 명심해야 한다. 마치 2000년 전에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 가셨지만, 그분은 복음의 말씀과 성령님의 감동으로 우리 안에 영원히 함께 살아 계시는 것과 같다.
(1) 번 이외의 글은 100주년 기념 교회의 이재철 목사와 서머나 교회의 고 김성수 목사의 기사내용에서 발춰했음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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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죽음이라는 것은 시간과 공간이 없는 곳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란자 박사는 “불멸이라는 것은 시간 속에서 끝이 없이 영원히 존재한다는 의미 보다는 시간 밖에서 함께 거주한다는 것을 뜻한다”고 말했다. 이 내용은 과학뉴스 사이트 ‘사이언스데일리’에 실렸다.
(2) 대 교부 폴리캅이 예수를 부인하지 않으면 화형 시키겠다고 협박당했을 때, ‘그 분이 내 평생에 예수가 나를 배신한 적이 없는데 내가 어떻게 예수를 배신하겠느냐’고 화형길로 가지 않았나. 내 평생에 배신하지 않았던 그분이었기 때문에 그분이 내가 불타 죽은 이후를 책임져 주지 않겠냐라는 믿음이 있었던 것이다.
(3) 비전은 나를 통해서 이루실 그분의 비전에 내가 동참하는 것이다. 그럼 그 비전을 어떻게 아는가? 이것은 기도원에서 아는 것도 아니고 책상 앞에서 아는 것도 아니고 나의 주어진 삶의 현장에서 아는 것이다. 그래서 비전의 사람들 인생은 모자이크 판과 같은 것이다. 내가 내일 무엇이 될 지 모르지만 오늘 주어진 현실을 하나님 소명으로 받고 열심히 한 장씩 색종이를 붙이는 것이다.
(4) 고 김성수 목사의 강의, 설교를 신자들이 듣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2015년 총회에 보고. 2015년 합신 총회는 자살로 생을 마감했던 김성수 목사가 생전에 가르치고 주장했던 내용들 속에 이단성이 많다고 판단하였다. 고 김성수 목사는 미국 CRC(Christian Reformed Church) 교단 목사로서 미국에서 남가주 서머나 교회를 개척(2004)하여 많은 사람들의 호흥을 얻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의 설교의 내용과 사상이 사람들에게 알려진 것처럼 개혁신학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는 강한 비판도 함께 일어났다.
죽은 사람의 설교 영상만 좋아하고, 죽은 자의 설교 영상을 틀고 예배를 드리겠다고 하는 괴이한 성향을 보이는 김성수 추종자들의 모습은 이단스럽다. 결국 ‘김성수 귀신숭배’, ‘김성수 제사 종교’의 길로 들어섰다고 해도 달리 변명할 수가 없는 모습이다. 지금도 LA 서머나 교회, 북가주 서머나 교회, 뉴저지 서머나 교회, 산타 바바라 서머나 교회, 서울 서머나 교회에서는 2년 전에 죽은 김성수 목사의 설교 영상을 틀고서 예배를 드리고 있다고 한다.
(5) 합신의 신학위원회는 고 김성수 목사의 신앙과 사상을 연구하여 2015년 총회에 보고하였다. 합신의 신학위원회는 대략 다음과 같은 점에서 고 김성수 목사의 사상과 가르침이 심히 비성경적이고 이단적이라고 보고했다.
1) 하나님의 선택에 대한 운명적인 오해
2) 하나님을 죄의 원인자로 만드는 오류
3) 옛언약과 새언약을 분리하는 오류
4) 인간이 선악과를 먹을 수 밖에 없는 존재로 지어졌다는 그릇된 성경해석
5) 거듭난 신자의 행함과 선행에 대한 그릇된 가르침
6)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책임에 대한 그릇된 가르침
7) 기존 교회를 거짓 교회로 몰아붙이는 오류
그리고 합신 신학위원회는 다음과 같이 결론지었다.
“1. 이상에서 살펴본 것 같이 고 김성수의 강론 내용은 장로교회나 개혁교회의 전통적인 가르침에서 크게 벗어났다고 사료됩니다.
2. 그의 적은 누룩이 많은 신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하는 사단적인 요소가 많아 보입니다.
3. 억지로 성경을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른다는 말씀이 있습니다(벧후 3:16). 연약한 신자들이 미혹에 이끌려 굳센데서 떨어질까 심히 염려가 됩니다.
그러므로 교단 산하 모든 교회는 고 김성수의 저술과 강론을 듣거나 그것을 추종하는 일이 없도록 하여야 할 것을 제안합니다.”
<결론>
신앙이 아닌 종교집단이나 조직은 하나님의 절대권위를 마치 자신들의 고유특권인 양해서 희생과 헌신과 낮아짐이 아니라, 교리나 교회질서라는 이름으로 성도들을 통제하고 가르치려 들지요. 카톨릭이 그랬고, 지금은 소위, 개신교 집단이 캐톨릭 흉내를 내면서 자랑스러운 양 그 짓을 부끄럼 없이 행하고 있습니다. 세상 기준을 세워 남을 판단하고 이단이라는 이름으로 정죄해서 파문을 하고 화형대에 올려 하나님의 백성을 불에 태워 죽입니다.
거기에는 인간의 오만과 자랑과 교만의 죄만 가득해서,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가 자리할 틈새가 없습니다. 마른 뼈가 부딪히는 소리만 가득하지요. 하나님의 숨인 생명이 없다는 겁니다. 소위, 세상에서 잘 나가는 교회 목회자나 지도자들은 죽어서 이름을 남기기는 커녕 오명만 더덕더덕 남기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들은 이미 세상에서 자기 영광을 받았기에 하늘에는 더 이상 받을 상급이 없다고 했다.
만약 죽어서 예수님처럼 이름을 남겼다면, 그것은 문자 그대로 그의 인품이나 남긴 행위나 명성 때문에 이름을 얻은 것이 아니라, 말씀과 진리로 십자가 부활과 영생을 우리에게 몸소 증거로 보여 주신 예수님의 은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남을 판단하고 죽이는 것은 2000년 전에 예수에게 그랬듯이 소위 시대의 기득권 세력인 바리새인들 밖에는 없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긍휼함이 아니라, 세상 권세에 눈멀은 소경에 지나지 않습니다. 소경이 산 사람을 잡는 격입니다.
살아서도 이룰 수 없는 것을 죽어서 이룬다면, 그것은 분명 생명의 역사가 살아 움직인다는 의미고, 그것은 예수가 가신 뒤에 보내 주시기로 하신 성령님 역사가 아니겠는가? 성령의 역사는 그가 남긴 복음의 진리의 말씀 위에만 살아 움직이기 때문에, 예수 말씀대로, 그로 인해 지금은 전 세상 끝까지 예수의 복음이 전파된 것 아니겠는가?
사람을 보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죽어서 무엇을 남겼는가? 하는 것으로 판단해야 하리라. 그가 이름을 남겼는가? 아니면 말씀과 진리인 생명을 남겼는가? 예수님은 세상에서 최고의 죄인에게 해당하는 극형인 십자가 형을 당하고 수치스럽게 죽었지만, 지금은 하나님 아들이라 불리우고 있지 않은가? 그가 남긴 말씀이 바로 진리의 생명이었기 때문이었음을 우리는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
신앙인에게는 죽고 살고 하는 세상 문제나 형식에 집착을 가지고 연연하지 않습니다. 그들에게는 죽음이라는 제약이 없기 때문입니다. 영생을 사는 사람들에게는 세상 모든 것이 한낱 스쳐 지나가는 바람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모든 세상 교훈은 하늘 나라를 가르치는 그림자에 해당하는, 반면교사에 지나지 않습니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 보면서 일희일비를 한다고 한들, 변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것은 하늘의 실상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하늘의 실상은 죽어서도 흥해야하는 진리인 하나님 말씀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집착하는 이 땅에서의 육체는 쇠해야 하는 겁니다. 이 땅의 육체는 마땅히 죽어져야 하고 망해야 하는 겁니다. 진리인 말씀 안에 거하는 한, 우리는 삶과 죽음을 넘어선 영원한 하늘의 거룩한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내가 사람의 판단을 보랴, 하나님 심판을 보랴?
♡도천 곽계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