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야, 진리가 답이야!
인생의 목적이 무엇인가?
자신을 세워서 널리 알리는 거다. 결국 소통의 문제다.
사람은 이름을 남기고, 호랑이는 가죽을 남기기 위해서 열심히 소통의 삶을 가꾸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떻게 자신을 세우고 알리는 소통을 해야 하는가?
맹자는 이 질문에 대해서 최고의 탁월함은 ‘간결함’에 있다고 한다.
지경을 넓히기 위한 인생 경륜을 쌓는 모든 노력도 소통을 위해 자신을 간결하게 설명하기 위해서이다.
소통은 상호 관계의 작용에서 비롯 되어진다.
상호 관계를 최고로 탁월하게 만드는 것은 간결해야 한다.
여기서 간결함이란, 관계를 맺는 상호 간에 부족함이 없다는 것이다.
인간이 지구상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먼저 숨을 쉬어야하고, 음식을 섭취해야 한다. 이는 생존의 관계를 의미한다. 인간은 공기와의 관계, 기타 식물과 동물과의 관계를 통해서 생존을 이어가게 된다. 이때 인간과 공기와 식물과 동물과의 관계는 그렇게 복잡한 관계식을 동원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물 흘러가듯 일상에서 완성 되어져야 한다.
모자와의 관계도 그러하다. 어느 애기가 젓 떨어질까 엄마를 걱정한 나머지 젓동냥하러 이곳 저곳을 기웃거려야할까? 어떤 상황에서도 모자는 한 몸이 되어 떨어지지 않도록 간결하게 관계가 설정 되어 있다. 이것이 자연의 법칙이자, 진리라고 한다.
공기가 인간에게 간결하듯, 진리도 인간에게는 그러하리라. 진리는 우리가 일상에서 공기처럼 의식하지 않고 함께 먹고 마시머 사는 것이다. 어쩌면, 생명이 살아 있는한, 진리도 함께 우리와 거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생명은 육의 생명이기도 하지만, 영혼의 새명이기도 하다. 그 영혼은 늘쌍 우리 안에 머무르면서 양심을 통해서 긴밀하게 소통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이러한 양심에 바탕을 둔 진리와 함께 하지 않을 때에 설명이 혼탁해지고 길어지면서 중구난방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진리와 함께 긴밀히 소통하는 한, 진리가 간결하게 소통을 이끌어 가는지도 모른다. 생명은 스스로 진리 안에서 완성 되기에 복잡해서는 안 된다. 인생의 깊고 넓은 지경을 가진 경륜은 우리 스스로가 애써 세우는 것이 아니라, 생명에 충실한 가운데, 진리 안에서 하나의 관계로 형성이 되면 진리에 무임승차해서 소통은 간결하게 완성된다.
“바보야, 진리가 답이야.”
♡ 안응 곽계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