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 Style

세상의 이런 저런 이야기?

“진리는 돈과 사랑의 적절한 균형이 아닐까요..?ㅎㅎ”

ㅎ 결코 양립이 안됩니다. 윈윈 전략은 세속에서 나온 거지요. 한 쪽만 선택해야 합니다.

“전 한쪽으로 치우치는건 진리가 아닌 것 같아요.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는 게 진리가 아닐까요..?ㅎ”

ㅎ 재미 있네요. 이언령 비언령? 세상과 진리는 적용이 안됩니다. ㅎ

“세상과 괴리된 진리는 판타지겠죠. 사람이 살아가는데 판타지도 필요하겠지만.. 판타지는 진리의 일부인 것 같습니다..^^ㅎ”

허긴 따지고 보면, 진리 아닌 것이 없지요. 

진리는 모든 것을 포함하니깐요. 

허나 여기서 굳이 진리라고 밝히는 것은 잠시 사라질 것과 영원한 것을 구별하기 위함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이러한 구별은 아마도 성경에서 분명히 나누고 있는 내용이지요. 굳이 종교를 들먹이는 이유는 그래도 이에 대한 분명한 증거를 제시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자기가 말하는데로 하면 죽어서 천국간다고 한다면 그 사람이 사기꾼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만약 죽어서만 알 수 있다면 인간은 죽기전에 누가 사기꾼이고 누가 진리를 말하는지 알 수 없겠죠.

살면서 그런 검증 없이 믿어야 한다면 누구 말을 믿든지 아무 상관이 없다는거죠. 어차피 확인 할 수 없는거니까요. 저는 진리는 그런게 아닌 것 같아요. 진리는 사는 동안 경험되어지는 것 같아요.

성경에서도 진리는 뜻이 하늘 따로 땅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ㅎ”

매우 재미 있습니다. 

한 편으로는 옳고, 한 편으로는 아닌 것 같기도하네요? 

ㅎ 묘하게 옳으면서도, 아닌 것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거꾸로 올라가야겠네요. 

우선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다라는 말은 많은 의미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 포인트는 지금의 땅은 하늘과 다를 뿐만 아니라, 하늘이 이루고자 하는 것이 없다라는 뜻인 동시에 하늘은 거룩하지만, 땅은 아니다, 즉 속되고 악하다라는 의미 입니다. 계시록에는 바다는 사라지고, 새하늘 새 땅이 이루어진다고 했지요. 이 땅은 마음 붙이고 살라고 창조한 게 아님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이 땅의 창조 목적은 영원한 하늘 세상을 그리워 하도록 그림자(허상)로 만든 이유입니다. 그러니, 하늘 나라가 이 땅에서 이루어지이다라는 의미는 이 땅을 축복하는 것이 아닌, 사실 종말의 심판을 의미하는 무서운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겁니다. 이 정도에서 속된 말로 표현해 보면, 이 땅에서 영화를 누리겠다는 야무진 꿈을 깨시라는 겁니다. ㅎ 농담입니다. 

그러니, 진리가 이 땅에서 경험된다는 진정한 의미는, 이 땅에서 삶을 우아하게 누리라는 의미와는 반대 의미임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이 땅에서는 인간이 원하는 삶은 없어야 합니다. 그게 진정한 의미의 진리를 경험하는 것이 됩니다. 이 땅에서는 세상이 바라는 행복이나, 평강은 없습니다. 이게 바로 윗 부분의 내용 반론 입니다. ㅎ

살면서 진리를 검증 받지 못한다면, 죽어서 검정 받는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하는 내용입니다. 결국은 검정 없이 믿는다는 의미를 부인하는 것이지요. 사람이 살다 보면, “눈에 보이는 것이 가짜고, 보이지 않는 것이 진짜다”라는 황당한 말을 하는 철학자들이 있더라고요. 허긴 적어도 대 예술가나 대 철학자라면, 작품에 한 번 정도 추상에 대한 열정을 품지 않은 사람은 없지요. 추상이란, 사물을 보이는 대로 그리지 않고, 보이는 이면의 상징이나 참 의미를 추구하는 작업이지요. 

필자도 양자역학을 공부한 사람으로서, 과학의 범주에서는 보이는 세계 보다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보이지 않는 미지의 세계가 무한대로 펼쳐져 있다는 진실을 밝혀 주고 있고, 현대 과학이 발달 할수록, 보이지 않는 세계로의 탐구가 끝도 없이 많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하지요. 

결국, 아무리 최첨단 과학이 동원된다고 해도 보이지 않는 비밀을 다 밝혀 낼수는 없다는 사실을 인정 안 할 수가 없다는 겁니다. 어쩌면 보이지 않는 세상은 과학의 범주를 벗어나서 존재하는 차원 높은 세상인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이를 시공간을 넘은 5차원의 세계라고 하지요. 

5차원의 세계는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겁니다. 우리가 알게 모르게 이를 경험한 사람들은, 죽지 않고 살아서도 행위가 아닌 믿음이라는 수단으로 이를 확신하며 살고 있는 거지요. 이들 믿음의 사람들은 이 땅에 살면서도 결국 진리를 깨닫고 경험하고 누리고 살고 있기에 절대로 세상에서 누리는 행복과는 다른 하늘의 의와 희락과 평강을 충만하게 누리고 살고 있답니다.

성경에서는 이를 두고, “내가 주는 생명수는 세상 물과 다르게 영원히 목마르지 않다”고 했지요. 세상 물은 먹어도 금새 목 마르지만, 진리를 짝한 사람들은 절대로 목마르지 않고 영원히 샘 솟는 생명수 안에서 사는 거지요. 

세상의 기준으로는 이를 두고 분명히 사기라고 하겠지요. 아니 사기라고 해야지 정상 입니다. 이해나 경험이란, 어쩌면, 자기 그릇만큼만 담는다고 하더라고요. 이 땅을 기준으로 한다면, 사기라고 하지만, 하늘의 기준으로 하면, 분명히 이 땅의 기준은 잘 못 된거지요. 사기라고 합니다. 

적어도 하늘을 우러러 보이지 않는 것을 믿음으로 품고 사는 사람들은 이미 이 땅의 삶의 경험을 지낸 사람들입니다. 그 의미는 세상 기준의 그릇을 갖고 있다는 겁니다. 다만, 이들은 그것에다가 하늘의 뜻을 담는 진리의 참그릇의 경지를 더 보태어져 있다는 겁니다. 그 그릇을 ‘은혜의 그릇’이라고 부릅니다. 

♡ 안응 곽계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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