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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산이 높다하되, 못 오를 리 없건마는?

산을 오르고 내리는 것은, 마치 인생을 먼저 경험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지 않을까? 산행은 인생을 경험하기 전에, 먼저 맞보기로 경험하여 인생을 예측해 보는 것이라하겠다. 그런 의미에서, 산은 미리 인생을 알게하고, 인생을 어떻게 적응하여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근거를 제공해 준다. 

이 근거의 근사치를 100% 신뢰하여, 인생에 적용해서 살 수만 있어도, 인생을 사는 것이 그리 험악하지 만은 않을 것이리라. 아무리 오차가 크다고 해도 그 오차로 인해서 그리 손해볼 것은 없기 때문이다. 

‘배우고 습득하는 것을 학습’이라고 한다. 배울 학에 익힐 습자다. 

아무리 배워서 지식이 넘쳐난다고 해도 몸소 체험하면서 익혀서 자기의 것으로 만드는 과정을 거쳐서 함께 나누고 누리지 못한다면, 이는 무익한 것이 지나서 오히려 해가 되기도 한다. 

이를 두고 ‘비만 현상’이라고 한다. 

지식의 비만이야말로 교만의 첩경이요, 죄와 사망의원인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산을 대하면서 자연과 대화를 나누고, 산을 오르면서, 세상 중력을 거슬리면서 도전하는 자세를 통해 험한 인생 길을 대하는 진지한 모습을 몸에 판 박아 넣게된다. 아는 지식과 더불어 삶을 이해하고, 육체를 부수어서 가루를 내는 힘든 등정의 과정을 통해서 비로소 정상을 만나는 겸손함을 익히게 된다. 

누가 “정상을 30m 바로 눈 앞에 둔 채, 거의 숨이 끊어지는 경험을 하지 못한 자는 산을 논할 자격이 없다”고 했던가? 그렇다. 정상을 다 오른 것 보다, 정상을 눈 앞에 두고 사망을 경험하는 체험이야말로 산이 존재하고, 진실로 그 존재감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은 사람일 것이다. 

인생을 산에 비유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인생의 막장인 죽음을 미리 경험하게 하는 것은 아닐까? 산은 살았지만, 죽는 경험을 제공한다. 그래서 정상이 높으면 높을수록, 산의 명성이 더 높은 이유가 되는 것은, 그 죽음의 심도를 더경험하게 때문이 아닐까? 

정상이 높으면 골짜기도 깊다. 

그 높은 정상과 깊은 골짜기를 오르 내리면서, 살아서 죽는, 그리고 죽어서 다시 사는 부활의 오묘한 비밀을 습득하게 된다. 배워서는 도저히 만날 수 없는 거듭남의 경험을 산으로부터 교훈을 받을 수 있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지만, 이를 통해서 인생을 깨닫게 되는 것은, 깨달은 자만이 인생의 주인 뿐만 아니라, 산과 물을 포함하는 대우주의 참 주인으로 등극하는 영광을 누리게 되리라. 

♡ 안응 곽계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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