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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의 도리란?

“노자는 큰 일과 작은 일, 어려운 일이나 쉬운 일을 구별하지 말고 깔보지 말며, 안이한 태도 대신에 신중하게 대하는 것이 군자의 도리라고 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 예외 없이 어려움을 겪는다”고 가르치고 있다. 군자의 도리를 따르는 것에 대해서는 무어라 달리 할 말은 없지만, 군자의 도리를 운운하는 처지에 인생의 어려움에 대한 경고를 하는 것이 왠지 도를 터득한 군자 답지 않은 일로 여겨져서 그다지 깨운한 마음을 가질 수가 없다 하겠다. 

사실 도를 튼 사람은 인생의 경륜이 많은 사람으로 상황이나, 현상의 소소한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을 하지 않는다. 이는 큰 뜻을 품은 사람들의 일반적인 태도이면서 동시에 남의 사정에 대해서도 동일한 시각으로 처신한다. 그야말로 경륜이 있는 도를 튼 경지에 있는 사람은 모든 것이 하늘의 뜻이라는 것을 깨닫고 있기에, 소소한 현상에 대해 이런 저런 주를 달지 않는다. 

그야말로, 세상에 살면서도 세상에 대해 구속 받을 일이 없다. 어쩌면 도를 깨우친 사람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존재감을 가지고 있어서 세상 돌아 가는 일에 개의치 않는 듯, 남의 일을 보는 듯, 담담하게 대도무문의 생활을 한다. 그러니 도를 세상 일과 연관해서 주는 가르침이야 말로, 도의 경지에 있는 노자께서 읊으신 것은 어느면에서는 도에 어긋나는 일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이런 생각은 어떤가? 

도의 높은 경지는 나를 비우는 것이다. 극단적으로 나를 객관화해서, 본능적 자아인 id와 초월적 자아인 ego를 벗어나는 것이고, 나의 존재를 지우는 것이 도가 지향하는 목표가 아니겠는가? 나라는 존재감을 지운다는 것은 나라는 존재감을 세우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극과 극은 통한다고 했던가? 나를 죽이는 것이 곧 나를 세우기 위함은 아닌가? 

결국은 나를 중심으로 우주가 돌아가는 것 아니겠는가? 나와 관계되지 않은 모든 것이 무의미하기에, 내가 인식하지 않는 모든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는 양자역학적 관점에서 본다하드라도, 궁극적인 도의 결과는 내가 우주의 중심에 서는 것 아니겠는가? 달리 말하면, 내가 신이 되는 것이 궁극적 도가 추구하는 목적이 될 것이다. 

이렇듯, 도의 의미도 대척점의 모순 점에서 새로운 도약을 도모한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은가!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듯해야하고, 존재하지 않은 듯하지만, 기실은 극단적 존재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이 우리를 혼란스럽게 한다. 역설적 모순 위에 서 있는 것이 도의 깊은 의미이기도 하다. 이는 세상과 하늘이라는 두 대척점의 의미에서도 유사하게 발견되는 사항들이어서 매우 흥미로운 화두가 될 것으로 기대 되는 사항익도 하다. 땅과 하늘, 인간과 신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섬세한 내용들이다.

♡ 안응 곽계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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