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은 노인답게!
아무리 늙음 위에 색다른 치장을 한다해서 더 이상 나아지거나 달라질 것은 없을 것입니다.
늙으면 낡아지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고 또 신선도를 기대할 도리가 없는 후패한 식품에 비교됩니다. 아무리 값비싼 고기도 시간이 지나면 부패하고 상해서 처리 곤란한 것은 너무나 다연한 인생 절차입니다.
이제 노인의 반열에 막 들어선 본인도 지하철 노인석에 들어서며 불편해 하시는 노인장들을 볼 때는 얼굴에야 표현을 못하지만 십중팔구 속 마음에는 늙음을 경멸하는 순간의 찌그러진 마음을 회개하곤 합니다.
그렇다고 옷맵시나 몸가짐을 달리 치장한다고 해서 그리 달라질 것은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구부정한 허리와 등에 덕지덕지 붙은 누더기에 지나지 않지요?
늙음은 젊음의 세련과 열정과 다른 여유 있는 인품을 나타낼 수 있는 인생의 계절입니다. 봄은 봄대로 겨울은 겨울대로 계절의 묘미를 누리도록 처신하는 것이 늙음을 발하게 할 수 있는 지혜라는 생각을 가집니다.
늙음에 어울리지 않는 외모에 대한 과한 치장은 오히려 젊은이들에게 혐오감을 불러 일으키는 빌미를 줄 수도 있다는 사실, 그리고 늙으면 늙은대로 자신 있는 당당한 태도를 가지고 신 중년의 새 시대를 열어가야겠습니다.
♡도천 곽계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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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지즘(ageism))
우리 사회에 만연한 에이지즘 (ageism : 노인차별)이라는… 늙은 사람을 더럽고 둔하고 어리석게 느껴 혐오하는 현상이다.
노인은
무식하고,
고지식하고,
불친절하고,
이기적이고,
비생산적이고,
의존적이고,
보수적이고,
슬프다는
젊은층들의 노인에 대한 선입관을 말한다
고위직 법관을 지낸 선배 한 분이 계셨다.
법정에서 재판장인 그 분의 모습을 볼때마다 고개가 저절로 숙여지는 카리스마가 있는 분이었다.
부드럽고 관대하지만 그 너머에는 총명과 지혜가 넘쳐 흘렀었다. 소박한 그 분은 노년이 되어서도 눈에 띄지 않는 평범한 옷을 입고 다녔다.
어느 날, 그 분을 만났더니 웃으면서 이런 얘기를 하셨다. “동네 과일 가게 앞에 가서 과일을 내려다 보고 있었어, 그랬더니 잠시 후에 가게 주인이 나보고 ‘아저씨 박스 없으니까 다음에 오세요’ 라고 하는 거야.
처음에는 그게 무슨 소린가 했지.
나중에 생각해 보니까 내가 그 가게에서 버리는 박스를 얻으려고 온 불쌍한 노인으로 생각했던 거야.”
늙으면 그렇게 초라하게 보일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선배는 원래 부잣집 아들로 상당한 재력가이기도 했다. 그러나 늙으면 누구나 초라하게 보여지고 사람들이 싫어하는 것 같기도 하다. 어제 점심 시간이 조금 지나서 점심 먹은 게 체했는지 속이 불편했다.
길가에 약국이 보였다.
유리문에는 최고 명문대학의 배지가 코팅 되어 있었는데 ‘나는 다른 약사와 달리 일등품이에요.’ 라고 말하는 것 같기도 했다.
약국 안에는 가운을 입지 않은 약사로 보이는 40대 초반의 남자가 혼자 앉아 있었다.
눈길이 부리부리한 게 불만이 가득찬 느낌이었다.
“활명수 한 병만 주세요.”
내가 공손하게 말했다.
늙을수록 젊은 사람들을 대할 때 조심하면서 예의를 차리자는 마음이었다. 그 약사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활명수 한 병을 꺼내 던지듯 앞에 내놓았다.
내가 1,000 원짜리 지폐 한 장을 건네줄 때였다.
“이 안에서는 약 못 먹어요. 나가세요!!”
안내나 설명을 하는 게 아니라 내쫓듯 하는 태도같이 느껴졌다.
구걸하러 온 거지라도 그렇게 하면 안될 것 같았다.
나는 약국 유리문을 밀고 나와 거리에서 활명수를 마셨다. 그런데 당장 그 병을 버릴 데가 없어 다시 약국 문을 들어가 그 남자에게 물었다.
“병은 약국 안 쓰레기통에 버려도 됩니까?”
“그러세요.”
그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속에서 슬며서 불쾌한 기운이 솟아 올랐다.
싸구려 약 한 병을 팔더라도 고객에게 그렇게 불친절하면 안될 것 같았다.
<늙어가는 법>이라는 책을 쓴 한 여성 노인의 글이 떠올랐다. 늙어서는 젊은 사람이 불손하다고 화를 내거나 항의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당연히 굼띠고 둔하고 추해진 늙음을 받아 들여야지, 항의하는 것 자체가 그 자신이 모자라는 걸 증명하는 행동이라는 것이다.
젊은 사람이 불쾌한 태도를 취하거나 말을 하더라도 그건 그 사람의 모자라는 인격이기 때문에 구태여 말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나는 참고 약국 문을 열고 나왔다. 그런데도 뭔가 찜찜해서 그냥 떠날 수가 없어 다시 약국으로 들어가 물었다.
“정말 죄송한데요.
한 가지만 여쭤봐도 될까요?”
“뭔데요?”
“이 약국에서 약을 샀는데 왜 안에서 약을 먹으면 안 되고 길거리에서 먹어야 합니까?”
“약을 먹으려면 마스크를 내려야 하잖아요? 그러면 병균이 쏟아지잖아요…”
그에게 늙은 나는 세균 덩어리로 보이는 것 같았다.
왜 그랬는지 대충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의문이 있었다.
젊고 예쁜 여자가 오거나 비싼 약을 사가는 젊은 사람들한테도 그렇게 불친절하고 싫은 표정을 지었을까?
그건 아닌 것 같았다.
에이지즘은 늙은 사람을 더럽고 둔하고 어리석게 느껴 혐오하는 현상이다.
카페나 음식점에 가서 보면 노골적으로 싫어하는 표정을 짓는 주위의 사람들을 볼 때가 있다.
나는 젊어 봤다. 그리고 세월의 강을 흘러 늙음의 산 언저리에 와 있다.
나는 노인을 혐오하는 일부 젊은이들의 단순하고 짧은 생각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아마도 그들의 젊음이 영원할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유교의 경로 사상을 감히 바라지는 못하지만 에이지즘 까지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들도 곧 늙을 거니까…!
이야기를 마친 노선배의 눈가에는 회한의 씁쓸함이 젖어들었다. 늙을수록 자기관리를 잘해서 수치를 당하지 않도록 해야겠습니다.”
-신영길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