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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교회가 교회가 아닌 것을!

멋진 내레이션 입니다.

헌데, 저는 다른 관점에서 이를 바라봐야 된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지금의 소위 이 시대의 한국 교회라고 주장 하는 종교 조직은, 더 이상 예수님을 신랑으로 맞이할 준비된 신부된 교회가 아닙니다. 이제 더 이상 세상교회를 교회로 본다는 관점을 달리해서 헛수고 하시는 수고를 하지 않으셔야 할 것 아닌가? 하는 우려를 드립니다.

더 이상 그들은 정치부류에 해당하는 조직이지,

신앙의 모습도 찾을 수 없는, 적그리스도의 바로 그 모습 입니다.

그러니, 저주의 대상이지, 교훈이나, 가르침의 대상이 아님을 분명히 하시는 게, 아까운 시간 낭비하지 않는 하나님 자녀의 모습이라는 제언을 드려 봅니다.

선조가 더 이상 국민의 사랑 받는 왕이 아니듯, 현대 종교 집단인 교회야 말로

너무 썩어서 성도가 섬겨야할 대상이 아님을 선포해야 합니다.

그야말로 우상이 된 현대 교회는 노아 방주로 인해서 파도 깊은 곳에 수장 되어 사라져야 합니다. 예수는 없고, 탐욕의 찌꺼기만 남아서 교회라는 이름으로 장사나 하는 회칠한 무덤의 당사자들입니다.

@ 안응 곽계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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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징비록을 보면서!) – David Bang –

한국 교회는 하나님이 주신 ‘성경’이라는 진정한 의미의 ‘징비록’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왕을 잘 못 만나면 신하 노릇하기도 너무 힘들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유성룡이나 이순신 같은 충신들은 임진왜란으로 다 쓰러진 나라를 구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지만 당시 왕이었던 선조는 필요할 때는 그들을 전면에 내 세워 이용하고 백성들의 칭송이 들을 향할 때는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왕의 권위를 내 세워 교묘하게 그들에게 책임이 돌아가도록 상황을 만들어 낸다.

시대를 잘 못 만나면 충신도 역적이 되는가?

이 시대의 한국교회가 직면한 상황이 왜 그렇게 유사한지.

교회 정치와 권력을 교묘하게 이용하는 목회자의 밑에서는 교인 노릇하기도 매우 힘겨워 보인다. 그렇다고 교회를 떠날 수도 없고 남아서 교회를 섬기는 일을 계속하기도 어렵다. “군주는 책임을 지는 자리이다. 유성룡의 마지막 충언을 선조는 수용하지 않는다. 오히려 전란을 온 몸으로 막아 낸 충신 유성룡이 전란의 책임을 지고 물러나고 이순신은 전쟁터에서 장렬하게 전사한다. 한국 교회 내부에서 일어나는 문제도 언제나 그런 방식으로 처리되고 끝난다.

​바르게 사는 사람들이 말씀 편에 서는 사람들이 교묘한 교회 정치의 언제나 희생물이 된다. 교회 밖에 있으나 교회 안에 있으나 역사에 나타났던 한국의 지도자들은 늘 이런 수준인가? 징비(懲毖)’라는 말은 『시경』 소비편(小毖篇)의 “내가 징계해서 후환을 경계한다(予其懲而毖後患)”라는 구절에서 따 왔다고 한다. 한국 교회가 다시 살려면 하나님이 주신 ‘성경’이라는 진정한 의미의 ‘징비록’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제 안에 선조 같은 이중적인 자세는 없는가?

​제 자신을 돌아보는 마음으로 글을 올렸습니다. 불의한 일에 대한 공의로운 심판은 하나님이 하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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