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성도는 좌(左)로도 우(右)로도 치우치지 말라”고 했는가?
좌우로 치우치지 않는 중용의 상태를 진리의 기준이라고 한다.
그래서 우리 성도들은 좌로도 우로도 치우치지 않는 상태를 유지하기를 강요받는다.
이를 아마도 성도의 자격인 거룩함, 내지는 성화의 조건으로 여기는 것 같다. 그리고 흔히 소위 말하는 성도들의 집단인 교회에서는 강단에서 목회자들로 부터, 적어도 성도라면 이 거룩함을 강요받게 된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성도들이 좌로도 우로도 치우치지 않는 거룩함을 강요받는 것이야 말로 부서져야할 구약의 행위에 바탕을 둔 완성되지 않은 율법적 해석에 지나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아무리 성도들이라 할지라도 육의 껍질을 입고, 부정한 땅에 발을 딛고 세상에 머무는 한, 절대로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는 완전한 존재가 될 수가 없다. 본질상 분노의 자식인 우리들은 좌나 우로 치우쳐 지낼 수밖에 없는 부정되고 연약한 존재란 이야기다.
그러기에 거룩함이나 성화는 우리의 입장에서 거론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순전히 성령님의 도움으로 되어 지고 입혀지는 것뿐이다.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로 거룩해 지는 것이지, 어떤 경우에라도 우리 스스로 거룩함을 지어낼 수 없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비록 부족한 우리가 좌나 우로 치우쳐 있다할 지라도, 치우치지 않으신 기준 되신 진리이신 예수를 믿고 소망하며 따르는 한, 그와 함께 중심에 서 있다고 하나님이 간주하신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를 두고 성경에 이른 적절한 표현이 “심령이 가난한 자는 천국이 저희 것이라”는 표현이 아닐까?
이는 창세전에 하나님이 선택하신 심령이 가난한 자에게는 하나님이 조건 없이 그의 택하신 백성인 성도들을 죄 없다 하시고, 또 의롭다 하신다(칭의)는 이야기가 된다. 주제넘게 우리가 선한 행위를 해서 하나님을 기쁘게 하려하는 어떤 행위로도 구원이 없다는 내용으로 이해해야 한다.
비록 우리는 세련되지 않고 다듬어지지 못한 한심한 존재라 할지라도 그래서 하나님의 중용의 기준에 들지 못한다 할지라도 하등의 상관없이 하나님의 뜻대로 우리를 의의 의복으로 덮어 주사, 면류관 있는 영광의 보좌에 함께 앉히신다는 이야기다.
누가 “성도는 좌로도 우로도 치우치지 말라”했는가? 아무도 할 수 없다. 오직 한 사람, 근본 하나님 되신 선하신 예수님만 그리 하셨음을 우리는 고백하여야 한다.
♡ 안응 곽계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