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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우리가 사랑해야할 이웃!

일본의 소수 양심적 엘리트들에 대한 신의는 너무나 훌륭하지만, 대부분의 일본인들의 성격이나 품격은 그야말로 섬나라의 근성인 소인배에 지나지 않는다고 해도 그리 틀린 말이 아닐 겁니다.

특히 일본에서 태어나서 교육 받고 자라난 제일동포 분들도 보이지 않는 일본의 교만성에 물들어져서, 오히려 남(한국인)을 업신여기는 경향도 있지요. 한국과 일본 사이에 서서 고유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채, 사리 판단이 흐려질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한국에 와서는 일본인의 우월성을 앞세우면서 대우 받으려 하고, 한국에서 녹을 받거나 자신에게 유리할 때는 일본에서는 한국인의 정체성을 과하게 내세운다는 거지요. 특히 명문임을 내세우는 어설픈 기득권을 가진 제일동포들의 이중성입니다. 이는 비단 일본에만 해당 되는 것이 아니고, 미국 교포들이나 유학생들에게도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언제나 바른 소리라고 이야기하지만, 그 속에 담긴 저의는 휴머니즘과는 거리가 먼, 타향에서 이방인으로 받은 깊은 상처로 인한 우월감 속에서 자기의 존재감을 무리해서 내세우는 거지요.

그렇습니다. 어쩌면 상처 없는 자가 없듯이, 우리 모두가 소인배 근성으로 남에게는 강하고 자신에게는 여리고 여린 문둥병자인지도 모릅니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새 계명조차도 실천하지 못하는 질 나쁜 성도인지도 모르지요.

이웃을 우리에게 허락하신 것은 그들을 통해서 우리 자신의 죄를 잘 투영해서 살펴서 회개하게 하심이니, 어찌 그들을 미워만 할 수 있겠습니까? 원수를 사랑해야만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거지요. 멀리 있는 일본만 바라보지 말고, 가까이는 나의 가족이 있고, 부모 자식이 있고, 촌수도 없는 남편과 아내 사이가 있지요.

그리고 최후의 원수의 아성인 바로 ‘내 안에 있는 나 아닌 내’가 버티고 서서 하늘 문을 지나지 못하도록 가로 막고 있는 원흉의 장본인이지요. 세상은 돌고 돌아서 결국은 내 심장으로 돌아와서 비수를 꼽아야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 성도들의 거룩한 구별 된 삶입니다.

이것이 바로 “내 탓이요, 내 탓이요!”라고 부르짖으며 자기 부인하면서,이 땅에서 십자가 고난 가운데 살아야 하는 이유랍니다.

♡안응 곽계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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