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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인성의 한계는 하나님의 시작 입니다!

참 인간이란 동물은 매력적이다. 

그렇게 부서러지기 쉬우면서도 그렇게 강할 수 없고, 

그럴게 악할 수 없으면서도 그렇게 선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부서러질 정도로 약할 때에 무쇠도 감당 못하는 강함이 되는 한 편으로는 멀쩡한 사람을 살인을 할 정도로 악할 때에 살신을 할 정도로 이웃을 위해 생명을 던지기도 한다. 그래서 인간은 미스티리어스 하면서도 그렇게 천박하면서도 그렇게 소중할 수가 없는 존재들이다. 

인간이 무엇을 깨닫는다는 의미는 이 땅에 살면서도 하늘의 숨겨진 비밀을 조금씩, 아주 조금씩 알아 간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이 의미는 깨달음 조차도 완전하지 못하다는 이야기로 해석되어야 한다. 부분으로 전체를 짐작한다할지라도, 어쨌든 결코 완전하지는 못하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의 깨달음이란, 하늘의 의미를 아주 조금씩 알아가는 과정이라고는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인간이 살고 있는 하늘의 대척점인 이 땅의 허구성을 알아 가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 땅을 알고 완전히 부정하지 못하는 한, 동시에 진정한 하늘의 의미도 열리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 땅의 허구를 깨닫고 완전히 부정하는 것을 ‘회개’라고 하고, 하늘을 이해하고 완전히 받아들이는 것을 우리는 ‘믿음’이라고 하고 이 믿음은 우리를 ‘구원’과 하나님의 ‘영광’에 도달하게 한다. 어쩌면 회개는 우리가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건이고 하나님은 오직 스스로 존재하시는 분이라는 진실을 인정하는 데에서 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참 인간은 매력적인 동물이다. 

인성과 신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두 마음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신성으로부터 벗어난 인성 만큼 우리의 두 마음은 우리를 죄의 도가니인 탐심을 생산해 내는 공룡의 존재로 이끈다. 우리의 타고난 매력은 이와 같이 죄의 두 가지 마음을 가진 공룡으로 태어났기 때문이다. 

희로애락의 감정은 공용의 두 마음에서 유래된 것이다. 

희로애락의 감정은 마치 공룡이 분을 참지 못해서 입에서 내뿜는 불과 같이 허무한 현상일 뿐이다. 희로애락은 우리가 신성을 향해서 나아 가기 위해 부인해야할 두 마음의 얼굴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내가 아닌 또 다른 나에 지나지 않는다. 거룩한 신성으로 가는 길을 우리는 ‘성화’라고 하고 이는 인성을 부인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인성을 스스로 부인할 수 있는 인간은 하나도 없다. 

성경에서 선한 사람이 하나도 없다고 하는 이유이다.

인성을 스스로 부인할 수 없는 만큼, 신성은 스스로 간섭하여 하늘 백성을 완성하게 한다. 

“우리 부족한 인성의 한계는 하나님의 시작 입니다. 

지성의 한계는 말씀의 시작이요,  능력의 한계는 믿음의 시작이요, 

자아의 한계는 새생명의 시작 입니다.” 

♡ 안응 곽계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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